치열하게 전개되는 경기 도중 상대의 반칙으로 페널티 킥을 얻어내면 한순간에 흐름을 바꿀 수 있다. 물론 골 획득과 성공에 따라 경기는 천당과 지옥을 넘나든다. 이른바 ‘게임 체인저’로서의 역할이다. 특히, 페널티 킥 방식으로 진행되는 승부차기는 키커의 성공과 실패, 각 한 골 한 골이 승패를 가를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그리고 만일 그 경기가 결승전이거나 토너먼트 경기에서 승패를 가르는 상황이라면 선수들의 압박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유럽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승부차기가 두 번이나 나와 전 세계 축구 팬들이 가슴을 졸여야 했다. 더구나 그 팀들이 모두 우승 후보로 거론될 정도의 강팀들이었다.
12일 이강인 소속되어 있는 파리 생제르맹과 리버풀은 1, 2차전 합산 결과 1-1 무승부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그리고 연장전에서도 득점하지 못해 승부차기에서 승패가 갈렸다. PSG 골키퍼 돈나룸마가 리버풀 2, 3번 키커를 막아내고, PSG 4명의 키커는 모두 성공시키며 4-1로 승리했다. 이어서 13일, 레알마드리드는 1차전에서 2-1로 승리했지만, 2차전에서는 AT마드리드가 1-0으로 승리하며, 양 팀은 합계 2-2가 되었다. 이후 양 팀은 연장전에 추가 득점을 하지 못하고 마지막 승부차기까지 갔다. 승부차기에서 AT마드리드는 2번 키커 알바레스가 성공했지만 투 터치로 취소되었고, 4번 키커도 실패하며 기운이 레알로 넘어갔다. 그런데 레알도 4번 키커가 실패하며 위기가 왔지만, 마지막 키커인 뤼디거가 성공하며 4-2를 만들어 8강 진출에 성공했다.
결과적으로는 차이가 나 보이지만 매 순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였다.
대한민국 승부차기의 명승부로 꼽히는 경기는 2002년 한일 월드컵 8강 스페인전이다. 밀고 밀리던 경기는 0-0으로 종료되었다. 승부차기에서 히딩크 감독은 1번 키커를 황선홍, 2번 키커를 박지성, 5번 키커를 홍명보로 선발한 게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이들은 모두 골을 성공했다. 이렇듯 대한민국에서 베테랑과 신예들이 제 몫을 해 준 반면, 스페인은 당시 신예였던 호아킨 산체스의 킥이 이운재에게 막히며 8강에서 고배를 마셨다. 당시 붉은 악마와 온 국민의 열광적인 응원을 받고 있던 대표팀은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축구의 승부차기가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촉매제가 됐고, 온 국민은 함께 “대한민국!”을 외쳤다.
해외에서도 살아있는 전설 메시는 승부차기에서 항상 1번 키커로 찬다. 경험이 풍부하고 침착하며, 킥이 정확함을 평가한 것이다. 반면에 그의 라이벌인 호날두는 5번째 키커로 차는 것이 대부분이다. 탁월한 신체 조건으로 강력한 슈팅을 날릴 수 있어, 본인이 승리를 확정 짓는 자리에 욕심을 많이 내는 그의 성격이 반영된 것이다. 이를 히딩크의 승부차기 선수 선발과 비교해 보면, 그의 깊이 있는 이론과 적용에 놀라게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페널티 킥에서, 서로 맞서고 있는 키커와 골키퍼 중 누가 더 심리적 압박감을 받을까?
일단 키커의 공을 막아야 하는 골키퍼의 불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키커가 어디로 찰지 모르는 상태에서 골키퍼는 홀로 넓은 골문을 지켜야 한다. 더구나 키커는 최대한 빠르게, 구석으로, 골키퍼가 막을 수 없는 곳으로 슈팅하려 노력한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싸움이므로 골키퍼의 불안은 커진다. 피터 한트케는 이런 상황에서 영감을 얻어 『페널티 킥 앞에 선 골 키퍼의 불안』이란 소설을 창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더욱 불안을 느끼게 되는 것은 키커다. 한 번 주어진 기회에 실패하면 비난을 받는 키커와 달리, 골키퍼는 다섯 번 다 실패해도 비난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키커가 찬 공이 골라인을 통과하는 시간은 약 0.4초, 골키퍼가 감지하고 몸을 날리는 반응 동작 시간은 0.6초 정도다. 골키퍼는 공을 따를 수 없다. 골대 크기도 폭 7.32m, 높이 2.44m로 키커에 유리하다. 결국 페널티 킥은 산술적으로 키커가 이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론적으로 보면 키커가 이길 확률이 100%에 가깝지만 실제로는 70~80% 수준이다. 실제 경기에서는 상대 키퍼들은 키커들의 페널티 킥 시 습관이나 선호 방향을 분석하고 나오는 데다 이러한 분석된 데이터 외에도 여러 심리적인 요소들, 디딤발의 방향 등으로 방향을 예상해 미리 몸을 던진다. 여기에 키커에게는 실축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한 심리적 위축 등이 생겨 키커의 승률이 낮아진다.
전문가들은 고도의 심리전인 페널티 킥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는 키커가 심리적 압박감으로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보고 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깜짝 놀랄 발상의 전환이 일어났다. 키커와 골키퍼는 서로 절실하며, 급한 마음에 사로잡힌다. 키커가 슈팅 자세를 취하면 골키퍼는 최대한 빨리 자신이 예측한 방향으로 몸을 날린다. 이를 역이용하여 골문 중앙으로 공을 느리게 차면 골키퍼가 없는 골문으로 공이 데굴데굴 굴러 들어간다. 이른바 ‘파넨카 킥’이다. 이 기상천외한 장면에 골키퍼는 어이가 없고, 키커는 의기양양하며, 관중은 환호성을 지른다.
파넨카 킥은 페널티 킥을 하는 키커가 골을 향해 힘을 빼고 느리게 찬 슛을 말한다. 체코슬로바키아 축구대표팀의 파넨카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1976년, 유고슬라비아에서 열린 UEFA 유로 19762) 에서 체코슬로바키아와 서독이 2대 2로 비겨, 경기가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이때 안토닌 파넨카는 다섯 번째 키커였고, 골키퍼는 공을 차기 직전, 왼쪽으로 몸을 날렸다. 안토닌 파넨카는 텅 빈 골을 향해 느리게 공을 찼고, 득점에 성공했다. 당시 파넨카를 막지 못하고 굴욕적으로 패배한 독일의 골키퍼는 유명한 바이에른 뮌헨의 전설 제프 마이어였다.
파넨카의 대범함은 이슈가 되었고, 이후에도 UEFA 유로 1980, 1982년 FIFA 월드컵 등에 출전하여 파넨카 킥으로 득점하였다.
그런데 만일 골키퍼가 미리 눈치를 채면 파넨카 킥은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어지간한 강철 멘탈이 아니라면 중요한 대회에서 파넨카 킥을 시도하기는 쉽지 않다. 펠레는 "천재나 정신병자 아니고서야 차지 않을 킥"이라고 언급했을 정도로 위험성이 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 경기에서 대담하게 파넨카 킥을 구사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바로셀로나의 메시는 개인 통산 700번째 골을 파넨카 킥으로 넣었다. 최근에는 손흥민이 파넨카 킥으로 팀을 패배의 위기에서 구했다. 지난 9일 손흥민은 본머스전에서 자신이 얻어 낸 페널티 킥을 오른발 ‘파넨카 킥’으로 가운데 골망을 흔들었다. 이로써 팀은 2-2로 패배를 면했다.
통상 페널티 킥은 빠르고 강하게 차지만, 손흥민은 정면을 향해 살짝 띄우듯이 차서 골키퍼의 타이밍을 빼앗았다. 손흥민은 이미 2023 카타르 아시안컵 조별리그 요르단전에서 파넨카 킥을 성공한 적이 있다.
파넨카 킥은 페널티 킥에서 키커가 불안과 절박함에서 벗어나고, 골의 성공률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페널티 킥에서 공은 빨라야 하고, 구석진 곳을 향해야 성공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발상이다. 오히려 불안한 골키퍼가 미리 움직일 것을 가정하여 골의 중앙으로 느린 속도로 차는 역발상의 킥이다. 한순간에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긴박한 상황에서, 자신과 팀의 성과를 책임져야 하는 압박감 속에서 찾아낸 놀라운 사고의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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