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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과 여수, 그리고 충무공 이순신

김순철 (통영쪽빛감성학교 대표) | 기사입력 2025/04/07 [03:30]

통영과 여수, 그리고 충무공 이순신

김순철 (통영쪽빛감성학교 대표) | 입력 : 2025/04/07 [03:30]



통영쪽빛감성학교 김순철대표는 1981년 고향에서 공직을 시작한 이후 39년 동안 줄곧 통영시에서 공직에 헌신했다. 2002년 《수필문학》으로 문단에 나와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문학가협회, 통영문인협회(사무국장, 부지부장 역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통영시공무원문학회장, 산양읍지편찬위원회 사무국장, 통영시지 편찬위원·집필위원을 역임했다. [편집자 주]

 

나는 통영시에서 공직 생활을 하는 동안 내내 ‘청마를 지키는 사람들’, ‘꽃과 의미를 그리는 사람들’, ‘설엽 서우승을 사랑하는 사람들’, ‘통영시공무원문학회’ 등을 조직하여 통영을 빛낸 문화예술인들의 기념사업과 문화운동에 앞장서 왔다. 퇴직 이후에도 통영쪽빛감성학교협동조합을 창립하고 현재 전국 공무원을 대상으로 매주 2박 3일 일정의 통영이순신리더십아카데미를 기획·운영하고 있다. 

 

특히 통영이순신리더십 아카데미는 내가 2020년 퇴직하면서 통영을 제대로 홍보하기 위해 기획한 공무원 연수 프로그램으로 그간 약 4,000여 명의 전국 공무원들이 통영에 와 3일간 체류하면서 통영의 속살을 배우며 느끼고 공직자로서의 자질을 함양하고 돌아갔다.

 

본 연수 프로그램의 핵심은 400여 년 전 武의 대표 충무공 이순신의 리더십을 배우고 100여 년 전 文의 대표 박경리의 문학적 감성을 느끼는 일정으로 구성되어 많은 공무원들로부터 퇴직하기 전에 꼭 참가해야 하는 으뜸 연수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가 다 좋아하는 통영에서 나고 자라고 고향에서 평생을 공직에 헌신한 일이야말로 큰 축복이고 행복이다. 더더욱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준 통영을 위해 그간 공직생활을 통해 배우고 익힌 지식과 경험을 모두 통영에 되돌려 드리고 싶다. 작은 이순신이 되어 전국의 공직자들에게 나라사랑, 지역사랑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이 일이야말로 생애 가장 큰 보람이요 행복이다.” 라고 여기며 제 2의 인생을 의미있게 보내고 있다. 

 

이런 나에게 먼데이 타임스 유철 편집국장이 최근에 통영에 관한 글을 좀 써달라는 부탁을 해오셨다. 이에 따라 통영과 여수에 관련된 최근 소식을 정리해보았다.   

 

통영과 여수는 쌍둥이 같은 도시이다. 동백, 동백꽃, 갈매기는 각각 통영과 여수의 시화, 시목, 시조이다. 두 도시 다 충무공 이순신과 관련이 깊은 도시이다. 이런 인연으로 통영과 여수는 오래전부터 자매의 연을 맺었다. 그동안 두 자매는 체육, 문화 등 다양한 교류를 통해 우의를 다져 왔다. 더더욱 3~40년 전에는 충무공 이순신이 왜적을 소탕하기 위해 수없이 다녔던 여수~통영~부산, 승전의 뱃길따라 여객선이 왕래함으로써, 두 도시는 둘도 없는 이웃이었다. 그렇게 사이좋게 지내던 두 도시가 최근 충무공 이순신 때문에 서서히 금이 가고 있어 정말 안타깝다. 

 

1591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딱 1년 전 충무공 이순신은 정읍현감에서 일곱 계단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인사제도 '불차탁용'으로 전라좌도수군절도사에 임명된다. 수많은 경쟁자들의 인사 불만에도 불구하고 선조는 단호했다. 그리고 충무공 이순신의 기용이 신의 한 수였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당초 전라좌수사 후보가 원균이었다는 것은 정말 역사의 아이러니다.

 

1592년 4월 13일, 일본의 전격적인 조선 침략으로 임란 7년 전쟁이 발발했다. 임란 초기 여수 인근 바다를 관할하던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전쟁이 일어났는데, “전라도 바다와 경상도 바다가 따로 있을 수 없다.”라며 종횡무진 남해바다를 누볐다. 그해 한산대첩을 끝내고, 이듬해 7월 부산과 여수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한산도에 진영을 구축하고, 8월에 조정에 보고한다. 서해로 진출하려는 왜적을 막기 위해서는 3도의 수군을 효율적으로 통솔할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와 요새가 필요했을 것이다. 선조는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새로운 직제를 신설하고, 공을 초대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했던 것이다. 따라서 한산진영은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영이었던 것이다. 그 역사적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하겠다.  

 

얼마 전 우리 통영쪽빛감성학교 협동조합원 일행 13명은 충무공 이순신의 마지막 통제영 고금도와 전라좌수사로 근무했던 여수 진해루(현 진남관)를 찾아 공의 기를 듬뿍 받아 오기로 했다. 여수 진남관은 큰 베일에 싸여 대수술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사전에 여수시 유산관리과에 공문을 보내 우여곡절 끝에 해체, 수리 중인 진남관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진남관은 전라좌수영 터에 있던 진해루가 정유재란으로 불타 없어지자 제4대 이시언 통제사가 새로 지어 진남관이라 불렀다. 

 

여수진남관 유물전시관에 전시된 임란초기(1592년) 해전도에는 진남관을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영이라 표기해 두고, 한산도에는 아무런 표기도 해 두지 않았다. 임란 초기에는 삼도수군통제영과 통제사 직제가 신설되기 전인데도 여수 진남관을 최초의 통제영이라 표기해 두었으니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최초의 통제영은 한산진영이 아니던가?

 

그 지역을 사랑하고 홍보하는 일이야 누가 나무랄 것인가. 그러나 역사가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이순신은 통영, 여수만의 이순신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너머 세계의 이순신이다. 충무공 이순신의 유적을 두고 얼토당토 않은 싸움을 하기보다는, 이렇게 나라가 어지러울 때 공의 시대정신을 살려 국난을 극복하자는 결연한 의지를 다지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길일 것이다. 하늘에서 통곡하며 바라보고 있을 충무공 이순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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