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로고

‘젊은 피’ 10대들의 반란, 테니스계의 판도를 흔들다

민병준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5/04/08 [02:00]

‘젊은 피’ 10대들의 반란, 테니스계의 판도를 흔들다

민병준 (논설위원) | 입력 : 2025/04/08 [02:00]



테니스계에 10대들의 거침없는 도전이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31일(한국시간) 마이애미 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 19세 ‘젊은 피’ 멘식(54위, 체코)이 살아있는 전설 조코비치(5위, 세르비아)를 막아섰다. 멘식은 평소 자신이 롤 모델로 삼으며, 우상으로 받들던 대선배를 결승 상대로 만난 것이다. 

 

무결점의 사나이 조코비치는 명실상부한 테니스 GOAT로 불리는 대선수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마스터스 1000시리즈 사상 역대 최다승, 최고령 4강 및 결승 진출 기록을 작성하며 화려하게 결승에 올랐다. 더구나 조코비치는 이번 대회에서 상대에게 한 세트도 내주지 않으며 결승에 오르는 등,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냈다.

 

하지만 강인한 멘탈과 풍부한 경험을 자랑하는 조코비치도 자신보다 18세 어린 멘식의 힘과 패기 앞에선 역부족이었다. 멘식의 젊음과 도전 의욕이 조코비치의 테니스 두뇌, 기량, 체력을 모두 이겨낸 게임이었다. 결국 멘식은 결승에서 0-2(6-7 6-7)로 대선배 조코비치를 제압했다.

 

만 19세의 멘식은 10대답지 않은 침착함과 시속 220㎞에 달하는 강력한 서브로 조코비치를 압박했다. 서브에이스 1, 2세트 각각 7개, 전체 14개나 기록했고, 매치포인트에서도 서브에이스로 경기를 끝냈다. 게다가 이번 대회 내내 타이브레이크 상황에서 모두 승리하는 높은 집중력을 보였다. 특히 역사상 최고의 강심장이라 평가받는 조코비치에게 타이브레이크 상황에서 모두 승리하는 대이변에 팬들은 열광했다.

 

멘식은 강력한 서브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정교한 포핸드와 백핸드를 갖추고 있으며, 드롭 샷까지 절묘하게 구사한다. 또한 네트 플레이에서도 탁월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말 그대로 올라운드 플레이어이다. 

멘식은 이번 우승으로 세계 랭킹이 54위에서 24위로 수직 상승했다.

 

지난해부터 ATP 투어에서 우승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조코비치는 ATP 투어 통산 우승 횟수를 ‘99’에서 또 멈춰야 했다. 조코비치는 이 부문에서 지미 코너스(109회·미국, 은퇴), 로저 페더러(103회·스위스, 은퇴)에 이어 3위에 올라있다. 

 

멘식이 마스터스 1000시리즈 결승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조코비치가 2007년 마이애미 오픈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을 때, 멘식은 두 돌이 채 지나지 않은 나이였다. 멘식은 16세에 조코비치의 세르비아 훈련 캠프에 초청받아 테니스를 배운 적이 있다. 그는 이때 멘식의 잠재력을 알아봤다고 한다. 실제로 얼마 전 조코비치는 ‘폰세카(브라질), 러너 티엔(미국), 멘식’을 차세대 선두 그룹으로 꼽은 바 있다. 이들은 모두 19세의 ‘젊은 피’다.

 

멘식은 그동안 꾸준한 성적을 보이며 톱 50 진입에 성공했지만, 투어 대회에서는 준우승이 최고 성적이었다. 하지만 멘식은 이번 대회 8강부터 업셋에 성공했다. 아르튀르 피스(18위, 프랑스), 테일러 프리츠(4위, 미국)를 연달아 격파했으며, 마침내 결승에서는 조코비치마저 격파했다. 작년 상하이 마스터스 8강에서 조코비치에게 패했던 멘식은 약 반년만의 리턴매치에서 설욕에 성공했다. 그렇게 멘식은 본인의 첫 ATP 우승을 완성하며, 세대교체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조코비치는 경기 후 “인정하기 어렵지만, 멘식이 더 잘했다.”며 후배를 칭찬했다. 멘식은 조코비치를 향해 “당신은 내가 어렸을 적부터 우상이었다. 당신 때문에 테니스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한 멘식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하루”라면서,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기쁨을 만끽했다.

 

19세 ‘젊음의 반란’은 WTA에서도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새해 2월 말부터 열사의 나라 아랍에미리트를 더욱 뜨겁게 달구었던 두바이 오픈 최후의 승자는 17세 소녀 안드레예바(14위, 러시아)였다. 그녀가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클라라 타우손(38위, 덴마크)으로, 22세의 젊은 선수였다.

 

안드레예바는 시비옹텍(2위, 폴란드)을, 타우손은 사발렌카(1위, 벨라루스)를 각각 격파했는데, 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따라서 이 경기는 지금까지도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더구나 우승자 안드레예바는 1년 전인 16세 때만 하더라도 경기 도중에 눈물을 흘려 테니스인들의 연민과 비난을 동시에 받지 않았던가? 젊은 선수들의 성장은 이렇게 놀랍다.

 

마이애미 오픈 남자 테니스계에 젊은 패기 멘식이 있다면, 여자 테니스계에는 아이돌 그룹을 연상시키는 19세 이알라(140위, 필리핀)가 있다. 이번 대회에서 그녀는 그랜드슬래머 3명을 연파하는 놀라운 경기력으로 테니스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특히 이알라는 테니스 불모지와도 같은 필리핀 출신으로, 한순간에 필리핀의 국민 영웅으로 등극했다.

   

경기 초반부터 이변을 연출하던 이알라의 돌풍은 8강전에서 시비옹텍마저 집어삼켰다. 이알라는 지난달 27일(한국시간) 마이애미 오픈 9일째 단식 준준결승에서 시비옹텍은 2-0(6-2 7-5)으로 패하며,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이로써 이알라는 필리핀 선수 최초로 WTA 투어 대회 4강에 진출했고, 준결승 결과와 무관하게 필리핀 선수 최초로 WTA 투어 단식 세계 랭킹 100위 안쪽에 진입하게 됐다. 

이번 대회에 와일드카드 자격으로 나온 이알라는, 2010년 쥐스틴 에냉(벨기에, 은퇴), 2018년 빅토리야 아자란카(당시 683위, 벨라루스) 이후 마이애미 오픈 사상 세 번째로 단식 4강에 오른 와일드카드 선수가 됐다.

 

이알라는 대회 2회전에서 옐레나 오스타펜코(25위, 라트비아), 3회전에서 매디슨 키스(5위, 미국) 등 세계적인 강호들을 연파했고, 5회전인 8강전에서 시비옹텍을 만났다. 이알라는 8강에서도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며 필리핀 테니스의 역사를 새로 썼다. 각 대회 우승자로서 경기 스타일이 다른 그랜드슬래머들을 3명씩이나 연파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 더구나 19세의 나이에! 이알라는 시비옹텍과의 경기 후 인터뷰에서 “정말 믿을 수 없고, 매우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WTA 투어 대회에서 와일드카드로 나온 선수가 메이저대회 챔피언 출신 3명을 연파한 것은, 2023년 윔블던에서의 엘리나 스비톨리나(76위, 우크라이나) 이후 이알라가 두 번째다.

 

‘WTA 투어’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불과 2년 전 나달 아카데미 졸업식 때 시비옹텍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던 이알라가 이번에는 (시비옹테크를 상대로) 충격적인 승리를 거뒀다.”고 전했다.

 

2005년생인 이알라는 12세 때부터 라파 나달 아카데미에서 훈련해오며 실력을 향상시켰다. 그 결과 2020년 호주오픈 및 2021년 프랑스오픈 주니어 복식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2022 주니어 US오픈 여자 단식에서 우승하는 등 주니어 그랜드슬램에서 단복식 포함해 3차례 우승하며 세계가 주목하는 유망주로 이름을 떨쳤다. 필리핀 선수 중 주니어 그랜드슬램에서 2회 이상 우승한 선수는 남녀 통틀어 이알라가 유일하다.

 

이제 19세가 된 이알라는 성인 무대에서도 당당히 기량을 뽐내고 있다. 비록 이번 마이애미 오픈에서는 4강에서 페굴라에게 2-1로 패했지만, 그랜드슬래머 3명을 연파하며 테니스계를 놀라게 했다.

 

이알라는 왼손잡이로 가볍고 날렵한 풋워크에 망설임 없이 날리는 위너는 패기가 넘치며, 특히 포핸드 위너에 강점이 있다. 네트 플레이에 능하며, 빠른 코트 움직임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베이스라인 플레이와 상대 실수를 유도하는 끈질긴 수비가 돋보이는 이알라에게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나달을 연상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할 것만 같던 강자들도 언젠가는 그 위치에서 내려오게 된다. 그 변화를 일으키는 주체는 약동하는 젊음이다. 새롭게 전개되는 2025년 새봄, 테니스 변화를 이끌고 있는 남녀 10대 선수들은 또 어떤 역사를 써나갈 것인가? 흐뭇한 마음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