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먼데이타임스] 우리는 ‘우생순’ 신화를 다시 볼 수 있을까?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국가대표 핸드볼팀은 온 국민에게 깊은 감동을 선물했다. 당시 핸드볼은 비인기 종목으로 관심을 받지 못했으며, 열악한 환경과 지원 부족으로 선수들이 제대로 기량을 펼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국 여자팀은 끈기와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세계 강호들을 차례로 격파하며, 마침내 덴마크와 금메달을 놓고 결승전을 치르게 되었다. 체력의 열세로 한국팀의 어려운 경기가 예상되었으나 당대 최고의 골키퍼 오영란이 이끌던 대표팀의 파이팅이 예상외로 강했다. 경기 내용은 너무나 팽팽하여 전‧후반은 물론 연장전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결국 한국은 ‘승부 던지기’에서 패함으로써 은메달을 수상했다. 비록 금메달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한국팀이 조국의 명예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온 국민은 감격했다. 그리고 이 한국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영화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사람들은 이를 ‘우생순’이라 줄여서 불렀다. 그 이후 사람들은 감동적인 경기 내용에 대해 ‘우생순’을 떠올리며, 다시 그런 감동을 느껴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남녀 핸드볼팀이 다시 이런 희망을 싹틔우고 있다. 지난 21일 충북 청주 SK호크스 아레나에서 열린 슈퍼매치에서 남녀 대표팀이 모두 일본을 꺾었다. 남자 대표팀은 27대 25, 여자 대표팀은 29대 25로 각각 일본을 제압했다. 이 경기는 한일 정기전 행사로 진행된 것이다. 핸드볼 한일 정기전은 2008년 창설돼 매년 양국을 번갈아 가며 진행되었다. 그런데 2022년 인천 경기 이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중단됐었다. 올해는 한일 국교 관계 수립 60주년으로 3년 만에 재개된 것이다.
이날 경기에서 승리함으로써, 우리나라는 2008년 시작된 한일 핸드볼 정기전 역대 전적에서 남자부 11승 1무 2패, 여자부 11승 2패로 절대 우위를 이어갔다. 특히 여자부에서는 2013년부터 9연승을 질주했다. 정기전 결과만을 놓고 보면 우리나라가 일본에 대해 절대적인 우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결코 그렇게 녹록지 않다. 국제적인 중요한 경기에서 일본은 종종 우리나라의 발목을 잡았다.
2023년 10월 27일, 한국 남자 핸드볼 대표팀은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 준결승전에서 일본에 23대 34로 패하며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이 경기 결과는 정말 뼈아팠다. 그동안 한국은 일본과의 공식전에서 23승 2무 3패로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하던 상황에서 당한 패배였기 때문이다. 지피지기, 적을 알고 나를 돌아보며 시합에 임했어야 했는데, 우리는 일본을 너무 몰랐다. 전반 22분까지는 대등했지만, 이후 연속 실점으로 흐름을 내줬고, 후반에도 반격에 실패하며 11점 차로 완패했던 경기였다. 이 패배로 한국은 3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라는 아쉬운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도 최근 일본과의 중요한 경기에서 몇 차례 아쉬운 패배를 경험했다. 가장 최근에 겪은 아쉬운 패배는 2024년 12월 10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20회 아시아여자핸드볼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였다. 이 경기에서 한국은 일본에 24-25로 역전패하며 대회 7연패 달성에 실패했다. 전반을 12-9로 앞섰지만, 후반에 동점을 허용한 뒤 결국 역전을 당하며 한 점 차 패배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보다 약 1년 전 한국은 또 다른 패배를 맛보았다. 그것은 2023년 10월 5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였다. 이날 한국은 일본에 19-29로 10점 차 완패를 당하며, 3연속 아시안게임 우승 도전에 실패했다. 이 경기는 특히,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13년 만에 성인 대표팀이 일본에 패한 첫 번째 경기로 기록됐다.
이런 성적표를 받아들고 핸드볼협회와 관계자들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 핸드볼은 2021년 도쿄 올림픽 이후 남녀 모두 외국인 지도자 체제를 운영해왔다. 남자 대표팀은 포르투갈 출신 홀란두 프레이타스 감독이, 여자 대표팀은 덴마크의 킴 라스무센 감독이 각각 부임했다가 이후 스웨덴의 헨리크 시그넬 감독으로 교체됐다. 남녀 모두 외국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며, 서구의 발전된 시스템을 한국팀에 접목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남자 대표팀은 최근 2024 파리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2024년 아시아선수권에서도 5위에 그쳤다. 여자 대표팀 역시 파리 올림픽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으며, 아시안게임과 지난해 아시아선수권에서 일본에 연달아 정상 자리를 빼앗겼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대한핸드볼협회는 외국인 감독과의 동행을 끝내고, 남자 대표팀은 조영신, 여자 대표팀은 이계청 감독 등 국내 지도자 중심으로 체제를 전환했다.
대표팀을 국내 감독들이 지휘하게 되면서 선수 소집과 훈련 기간이 충분히 확보돼 한국 핸드볼의 핵심인 조직력 강화가 이뤄지고 있다. 그 결과가 이번 한일 정기전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앞으로 남자 대표팀은 9월까지, 여자 대표팀은 8월 선수촌 외 훈련을 진행하며 조직력 다지기에 매진할 예정이다.
이번 경기는 남녀 모두 앞서 살펴봤던, 일본에 대한 패배를 설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경기 내용도 훌륭했다. 먼저 열린 남자부 경기에서 한국은 경기 시작 후 약 7분이 넘도록 일본을 무득점에 묶어놓고, 김태관의 중거리포와 오황제의 연속 3골 등을 앞세워 5-0으로 성큼 달아났다. 전반을 15-8로 앞선 한국은 고른 선수 기용을 하면서 후반 일본에 추격을 허용하기도 했지만, 2골 차 승리를 무난히 지켜냈다. 김태관이 8골 및 2도움으로 맹활약했고, 골키퍼 이창우는 뛰어난 방어로 골문을 굳게 지켰다. 이어 열린 여자부 경기에서는 한국이 전반까지 3골을 앞섰지만, 종료 10분 정도를 남기고 연속 실점하며 22-22 동점이 됐다. 종료 5분여를 남기고 김보은의 득점으로 24-23으로 다시 앞선 한국은 상대 실책으로 공격권을 잡았고, 이때 일본 선수 2명이 차례로 2분간 퇴장을 당하면서 승기를 잡았다. 종료 약 1분 전에 허유진의 골로 28대 25가 되고, 이어진 일본의 7m 스로우를 박조은이 막으면서 승리를 확정했다. 이혜원이 6골로 크게 활약했고, 골키퍼 박새영은 철벽 방어율 41.7%(15/36)를 기록하며, 고비마다 선방을 펼쳐 한국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됐다. 한국팀은 남녀 모두 탁월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공격 패턴을 구사하며 높은 득점력을 보여주었으며, 자신감과 결속력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남녀부 최우수선수는 모두 한국팀에서 차지했는데, 남자팀은 김태관, 여자팀은 박새영이 각각 선정됐다.
한국 남녀 핸드볼 대표팀은 일본전 승리를 계기로 아시아 무대 재도약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감독 체제 전환 후 함께 승전고를 울리는 쾌거를 이룬 남녀 대표팀은 2026년 아시안게임 우승 및 LA 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목표를 향해 매진하고 있다. ‘우생순’ 신화는 이렇게 준비되고 있다. 물론 현재로서는 목표 달성이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2004년 당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도 불가능해 보였었지만 우리는 결국 성취해 냈다.
지금 핸드볼 대표팀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새롭게 출발하고 있다. 우리의 핸드볼 대표팀에 대한 높은 관심과 신뢰, 지속적인 지원은 새 신화를 창조해 내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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