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맡겨두라는 생각을 하자 저절로 비틀즈의 유명한 팝송 '렛잇비(Let it be!)'가 떠오른다. 벌들에게 맡기라고 할 때는 특별히 'Let it bee!'라고 써야하겠지. 양봉을 시작할 무렵 이 말이 좋았다. 그래서 '꿀벌사랑'이라는 동호회(카페)에 가입하면서, 닉네임을 ‘렛잇비’라고 지었던 일이 생각난다. 팝송 렛잇비의 가사 내용은 작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머니(Mother Mary)가 꿈속에 나타나 지혜의 말씀을 주셨는데, 그것이 ‘그냥 내버려 두어라!(Let it be!)'였다는 것이다. 그냥 순리대로 맡겨두면 될 것을 뭔가 억지로 하다보면 도리어 사정이 악화되는 일이 많다. 벌 기르는 일도 마찬가지다. 올해도 실수한 것 중 대부분이 벌들의 일에 너무 많이 개입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깨달음이 든다. 봄 벌 깨울 때 너무 일찍부터 벌들을 만지기 시작하여 도리어 성장이 늦어졌고, 분봉을 시작하면서 자주 열어보아 도봉(이웃 벌들이 침입하여 꿀을 훔쳐가는 행위)까지 당하는 바람에 봉군을 망치기도 했다. 아직까지 이런 실수를 하다니! 벌들이 내게 ‘제발 냅둬유! 우리가 알아서 할게유!’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렇다. 벌들에게 맡겨두고 벌들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벌들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래서 다음 팝송으로 이어진다. 사이먼과 가펑클의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The Sound of Silence)'이다. 매우 철학적이며 은유로 가득한 이 팝송의 가사는 “안녕, 어둠, 나의 오랜 친구여”(Hello, darkness, my old friend.....)로 시작하여, “침묵의 소리로 속삭인다.(.....whispered in the sound of silence)”로 끝난다. 사이먼이 말하는 ‘침묵의 소리’는 청마 유치환의 시구(詩句) ‘소리 없는 아우성’과 비슷하다.
벌들도 소리를 내기는 한다. 벌들은 집단적으로 날개를 흔들어 윙윙 소리(buzz)를 낸다. 일단 그 소리로 뭔가를 말한다. 분봉군을 그대로 두었다가 열흘쯤 뒤 벌통을 열었을 때 윙윙 소리가 크고 불안하게 들리면 실패한 것이다. 찾아보면 왕이 없다. 반면 열었을 때 벌통이 조용하고 벌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으면 성공이다. 눈부신 모습의 신왕을 알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소리로도 표현하지 못하는 많은 메시지들이 있다. 올봄, 벌을 한창 키울 때 벌이 늘어나지 않아서 초조하기 그지없었는데, 어느 벌통에는 석고병(유충들이 석고처럼 굳어지는 병) 증세까지 나타났다. 배운 대로 벌들을 축소하고 약제까지 사용했는데 호전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 갑자기 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날 봉장에 가자마자 병증이 있는 그 벌통에 꿀이 가득한 먹잇장을 하나 넣어주었다. 봄에 산란한 많은 식구들을 키우기에는 먹이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깨달음이 왔던 것이다. 며칠 후 석고병은 호전되었고, 우연인지 몰라도 아카시아 꽃이 피자 그 벌통에서 꿀을 가장 많이 따왔다. 벌들은 이처럼 침묵 속에서 행동으로 말을 한다. 그들이 내는 '침묵의 소리', '소리 없는 아우성'을 잘 들어야 한다. 그리고 벌지기인 나는 그들에게 생사여탈권을 쥔 하느님이 아니라, 그들의 소리를 듣고 도와주는 도우미가 되어야 한다.
벌을 키우거나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생산자로 생각한다. 그리고 농부가 이 생산과정을 모두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이 생각이 옳은 것인가?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생산품과 농사에서 나오는 소출이 같은 것일까? 자연의 시간 속에서 생명들이 활동하여 열매가 열리고, 꿀이 모이는 것을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 따라서 농부는 생산자가 아니라 기다리는 사람에 불과할 수도 있다. 기다림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그 느릿한 창조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 소리를 경청하고 생명들과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의 한 구절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대화를 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하고,” (people talking without speaking),
“사람들은 경청하지 않고 흘려듣기만 하네.” (people hearing without list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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