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허정에 들다』에는 총 68편의 주옥 같은 디카시가 주제별로 4부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1부 ‘구름을 낚는 매화’에는 대체로 사랑과 관련된 작품으로 「연주가 끝난 후」 외 16편이 수록되어 있고, 2부 ‘봄의 파르티잔(‘빨치산’에 해당하는 프랑스어)’에는 ‘인생’, ‘삶’과 관련된 작품으로 「외경」 외 16편이 들어 있다. 3부 ‘앵두 나라 꼬마 요정’에는 어린이의 마음과 관련된 작품으로 「꿈의 잠만경」 외 16편이 그리고 4부 ‘산사의 야삼경’에는 불교와 관련된 작품으로 「도반」 외 16편이 수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디카시란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하여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대상을 포착하여, 찍은 사진(영상)과 함께 문자로 표현한 시를 말한다. 디카시는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문학장르로서, 언어 예술이라는 기존 시의 범주를 확장하여 영상과 문자를 하나의 텍스트로 결합한 멀티 언어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한 장이 순간을 붙잡는 일이라면 디카시의 언어는 그 찰나에 감정과 사유를 얹는 일’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장 시인은 이번 디카시집의 발간을 위해 수 년에 걸쳐 순간을 포착하고, 그 순간에 언어를 입히는 작업을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시인은 본인이 사는 청주의 집 근처나 무심천, 괴산이나 영동 등 충북 지역은 물론 신안, 경주, 제주도와 강화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돌며 사진을 찍고 시로 승화시키기에 몰두했다. 장 시인은 평소 자전거 여행을 즐겼는데 이 역시 디카시 작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서다를 반복하면서 전국을 다니며 사진 찍기에 몰두했고, 건져 올린 사진에 의미를 입히는 작업을 꾸준히 지속해 왔다.
그의 디카시는 발로 쓴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터를 돌기도 하고, 어린이집 근처의 꽃밭을 바라보기도 하고, 물가에 쌓아 올린 돌을 무심히 넘기지 않으면서 사진에 담고 그 사진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시인은 이번 시집의 ‘시인의 말’에서 ‘시가 먼저 대상에 가 닿았는지 / 대상이 먼저 시를 끌어내었는지 // 모르겠다 // 언제부터 둘은 함께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디카시의 지난한 창작 작업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라고 여겨진다.
또 송찬호 시인은 이 시집의 표사를 통해 ‘시인에게 자연과 사물은 디카시의 심미적 대상일 뿐 아니라,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관조와 해학이 뛰어노는 너른 마당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인에겐 저잣거리와 인정과 풍속이 모두 디카시의 작업실이다. 그의 발길이 닿는 곳에 디카시가 있다. 디카시로 엿보는 삶의 비의(祕義)가 있다.’고 했다. 장 시인이 작품 창작을 위해 발로 뛰며 고뇌하는 끊임없는 노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평이라 여겨진다.
필자는 장 시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어떤 작품이 가장 애착이 가느냐’고 물었다. 장 시인은 ‘어느 작품이라고 애착이 가지 않는 작품이 있겠느냐마는 제목으로 잡은 「나비, 허정에 들다」와 아이들과 관련된 작품이 그렇다.’는 답변을 했다.
폭풍우 치는 꽃밭의 계절을 지나 마침내, 산과 물이 하나로 합장하는 그 허정의 난간에 두 나래를 접다
- 장문석, 「나비, 허정虛靜에 들다」, 『나비, 허정에 들다』, 고두미, 2026. PP140:141
여기서 ‘허정’이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물에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는 상태에 있음, 또는 그런 정신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즉 ‘아주 고요한 마음의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즉 분주하게 이 꽃 저 꽃을 찾아 다니던 나비가 ‘마침내’ 지극히 고요한 마음의 상태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송찬호 시인은 위에서도 제시한 바 있는 이 시집의 표사에서 ‘표제작인 「나비, 허정에 들다」에는 디카시로 보여주는 시인의 세계관이 오롯이 들어있다. 분주히 꽃밭을 날아다니다 난간에 앉는 나비의 모습에서, 시인은 들끓는 삶의 애증을 뒤로 하고 마음이 고요해진 시간을 발견한다. 산과 물을 배경으로 카메라에 잡힌 나비의 사진 구도도 뛰어나거니와 인생의 본질을 꿰뚫는 사유의 문장도 디카시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평하였다.
엄마 말 안 듣고 진흙탕에서 진탕 놀다 와서는 엄마가 집에 있나, 없나 배춧잎 구멍으로 엿보고 있다
- 장문석, 「청개구리1」, 『나비, 허정에 들다』, 고두미, 2026. PP114:115
필자는 장 시인이 어째서 아이들에 관련된 작품에 특히 애착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 대답을 구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들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30년이 훨씬 넘는 동안 교직에 있었기 때문이다. 교사로 아이들을 교육했고 정성을 쏟았기 때문이다.
이 시, 「청개구리1」은 다분히 동시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만큼 장 시인이 아이들을 좋아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마음을 예리하게 관찰하는 장 시인의 눈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으리라. 특히나 ‘배춧잎 구멍으로’ ‘엄마가 집에 있나, 없나’ 엿보는 모습에서 독자들은 웃음을 참을 수 없으리라.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바로 독자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할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집의 상당 부분은 어린이들이 어른의 지도 아래 어른과 같이 읽어도 좋을 작품이 많다.
어라? 이게 무슨 냄새지? 발 닦아라, 공부해라, 청소해라 잔소리 듣기 싫어 도망쳐 나왔는데 나 몰래 파리볶음 해 먹나?
- 장문석, 「청개구리2」, 『나비, 허정에 들다』, 고두미, 2026. PP116:117
이 작품의 사진을 보면 청개구리가 고개를 왼쪽으로 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장 시인은 그 모습을 아이가 엄마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으로 보았다. 그러면서 장 시인은 그 모습에서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장 시인은 이번 시집의 여러 작품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사실은 바로 이 작품이라고 슬그머니 실토했다. 그 말을 들으며 필자는 많이 웃었다. 장 시인의 그 고백에 필자 자신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앞서 제시한 3작품이 순간 포착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작가는 ‘분주히 날아다니다 난간에 앉은 나비의 모습’이나, ‘배춧잎 구멍으로 엿보고’ 있는 청개구리의 모습 그리고 마치 엄마의 눈치를 살피듯 고개를 옆으로 꼬고 있는 청개구리의 모습을 순간적으로 포착해 내는 데 성공했고, 그 사진에 시적 의미를 적절히 부여했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다른 작품도 그렇지만 특히 이 3작품은 디카시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 시집에 실린 디카시 68편은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귀한 작품이라고 필자는 단언한다. 그만큼 많은 독자들이 읽기를 권한다.
얼마 전 장 시인은 백령도 일대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물론 사진을 담아왔고, 그 사진에 의미를 입히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리라. 장 시인의 두 번째 디카시집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장문석 시인 프로필 1990년 〈한민족문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잠든 아내 곁에서』, 『아주 오래된 흔적』, 『꽃 찾으러 간다』, 『내 사랑 도미니카』, 『천마를 찾아서』, 『곰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시산문집으로 『시가 있는 내 고향 버들고지』, 『인생은 닻이 아니라 돛이다』, 『사랑은 서로를 건너는 것이다』, 동시집으로 『동물원 내 친구』, 디카시집 『나비, 허정에 들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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