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오지학교 탐사대 윤석주 고문은 충북 진천 출신으로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후 37년간 중고등학교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12년 정년퇴임 후에는 숲해설가 양성교육을 수료하고 숲과 자연생태 안내자로 활동하며 충북지역 숲해설가 대표를 역임한 바 있고, 2006년부터는 히말라야오지학교탐사대 활동에 동참하여 현재까지 14회에 걸쳐 네팔을 다녀왔다. 현재 청소년을 위한 자연생태 교육과 상담활동에 헌신하고 있다. - 편집자주
히말라야오지학교 탐사대(히오탐)는 말 그대로 네팔 히말라야 궁벽한 산속에 있는 작은 학교를 찾아 떠나는 도전적인 사람들의 이름입니다. 그들은 그곳의 학생들과 한때나마 함께 노래하며 춤추고, 뛰며 공부하고 교제를 나누는 일들을 좋아합니다. 18년째 이 발길이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순수하고 헌신적인 이들이 모여 고운 뜻을 오로지했기 때문입니다. 외부의 유력한 단체나 기관의 어떤 지원도 받지 않고 스스로를 세워나가는 자비량의 순례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24년 18차 탐사대는 1월 5일부터 20일까지 안나푸르나 (Annapurna) 산군 마차푸차레 (Machhapuchhare) 봉우리에 딸린 마르디히말(Mardi Himal)에서 새해의 꿈을 시작하려 합니다. 마르디히말의 뷰포인트는 해발 4,200m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김영식 대장을 선두로, 가장 힘들어하는 대원의 걸음걸이로 한 걸음 한 걸음 닷새를 걸어올라 갔습니다. 13명 전대원이 목표지점에 섰을 때, 정 부대장은 목이 메어 울먹이느라 제대로 인터뷰가 되지 않았습니다.
트레킹 중 우리가 묵는 마을의 지명도 재미있습니다. 오스트렐리아 캠프, 포레스트 캠프, 로우 캠프, 하이 캠프, 다시 로우 캠프, 시딩 (Sidhing).... 마치 군대 숙소처럼 모두 캠프(camp)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사실은 안나푸르나 산군의 이 지역이 정글 지역으로 온통 나무숲으로 이어져 있는 너무도 아름다운 코스이기 때문입니다. 캠프 따라 이동하고 캠프에서 쉬게 되는데, 이 캠프에 있는 작은 롯지(lodge)들이 여행자의 숙소가 되는 것입니다.
트레킹하는 동안 우리는 히말라야의 장엄하고도 아득한 풍경과 황량하면서도 쓸쓸한 모습을 동시에 보며 산을 오릅니다. 해발 7~8,000m의 머리에 흰눈을 쓰고 있는 설산이 동에서 서로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파노라마는 우리의 마음을 먹먹하게 사로잡아 말을 잊게 만듭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는 “사막이 아름다운 건 오아시스를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지요. 난 이렇게 바꾸어 말하고 싶습니다. “히말라야가 아름다운 건 모든 길들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우리가 오르려는 길들은 숲속이나 골짜기 기슭을 따라 숨어 있어, 들어와 밟기 전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정상으로 가는 보이지 않는 길은 전문 산악인들의 몫입니다. 그 길은 악전고투 자신의 발로 디딘 후에 그들의 이름을 남겨놓는 새길(신루트)이 될 것입니다. 히말라야 산줄기는 동서로 2,500km에 이르며 여기에는 8,000m 이상의 고산이 14개나 있습니다.
새벽 4시, 하이캠프에서 출발하여 어퍼 뷰 포인트에 이르니 일출, 히말라야의 붉은 햇살이 안나푸르나 동편부터 비추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서서 병풍처럼 둘러친 설산을 바라보는 마음은 무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장엄함, 숭고함, 비장함, 처연함... 겹쳐지는 온갖 상념과 거기에 성취감까지 벅차오릅니다.
히말라야의 경이로운 파노라마를 경험한 뒤, 이를 추스르는 시간이 바로 시딩 (Sidhing)에서의 솔로타임(solo-time)입니다. 대원들 모두 서로가 보이지 않는 언덕이나 계곡, 굽어진 논이나 밭 어딘가에 혼자 앉아서 자기 생각에 잠기는 3시간의 활동입니다. 이때 참가자 모두는 휴대전화를 가질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지나온 자신의 발길과 형편을 생각하고, 다시 나아갈 방향과 태도를 설계하는 오롯한 자기만의 시간 보내기입니다.
다음 일정은 바라부리 (Baraburi) 학교 방문입니다. 히말라야오지학교탐사대와는 10년째 계속되는 인연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50여 명의 학생이 다니던 학교였지만, 이제는 점점 줄어 겨우 15명 정도 남아 있는 가난한 오지학교로, 언제 폐교될지 모르는 안타까운 공립학교입니다. 우리 탐사대가 도착해 보니 마을 주민과 학부모, 학생들 모두 모여 우리를 환영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외국인 방문객인 우리의 이마에 행운의 붉은 점(티카 tika)을 찍어주고, 목에 꽃다발을 걸어주는 아이들과 포옹하며 감격해 마지 않았습니다.
저녁식사 후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전 대원 바라부리 지역 학생들 집으로 홈스테이(home-stay)하러 출발합니다. 나와 정수, 현성이는 어닐 푼(Anil Poon, 남, 11세)의 집으로 배정되었습니다. 우리 손을 잡고 자기 집으로 가는 신나는 아이들, 논둑 밭둑 길을 어두운 데도 뛸 듯이 빠르게 걸어갑니다.
사립문 들어가 조그만 마당을 지나서 방문 앞에선 잠시 눈을 크게 뜨고 멈추어야 합니다. 흐린 전등불로 방안이 어두컴컴하기 때문입니다. 거실이라고 해야 반반한 흙바닥에, 가운데 화덕이 있고, 벽쪽으로 찬그릇을 매달아 둔 주방입니다. 다른 한쪽으로 침대가 놓여 있으면 중류 이상의 살림살인데, 대부분은 멍석이 깔려있는 정도입니다. 대가족의 살림을 사는 집들은 이층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이 있고, 거기에 작은 침실이 이부자리 몇 가지와 함께 있을 뿐입니다.
어닐의 집에 아빠, 엄마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빠는 인도로 돈벌러 가고 엄마는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어닐은 할아버지(54세) 할머니(45세)가 키우고 있습니다. 이 집에는 어닐의 작은아빠(22세) 작은엄마(17세)도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준비한 학용품과 과자를 선물로 내어놓으니, 가난한 주인은 먼 데서 온 손님을 위해 마실 것과 간식을 준비합니다.
우리나라 60년대 시골집 모습 그대로인 어닐네 집, 엄마 아빠 보지 못하고 할머니 할아버지 품에서 자라나는 어닐 푼의 앞날에 그들 신의 가호가 가득하길, 그리고 손자를 키우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래오래 건강하길 빌며 잠을 청했습니다.
오전 학교행사는 친환경 양치질하기, 그림 그리기, 장명루(끈으로 만든 팔찌 일종) 만들기로 이어졌고, 노래와 춤 공연으로 흥을 돋우었습니다. 급수시설과 울타리 설치를 위한 사업비, 바라부리 학생들 모두에게 우리가 준비한 의류와 학용품을 선물하며 모든 행사를 마쳤습니다.
네팔은 따뜻한 나라입니다. 가 보지 않은 사람들은 높은 설산만 생각하여 아주 추운 나라, 방문할 엄두가 나지 않는, 산만 있는 나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위도상으로 볼 때 제주도보다 훨씬 아래인 북위 27도(제주도는 북위 33도)로 산악지대를 제외하면 아열대 기후입니다. 어디선가 본 네팔(NEPAL)을 꼭 들어맞게 규정한 재미있는 문구가 생각납니다.
‘Never Ending Peace And Love’
태양과 히말라야가 존재하는 한 이곳은 우리 히말라야오지탐사대의 활동무대입니다. <저작권자 ⓒ 먼데이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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