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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셰프 정보문: 열정과 도전으로 빚어낸 요리 이야기

유철편집국장 | 기사입력 2024/11/22 [12:35]

젊은 셰프 정보문: 열정과 도전으로 빚어낸 요리 이야기

유철편집국장 | 입력 : 2024/11/22 [12:35]



정보문 대표는 학창 시절에 보통 학생들과 달리 학교의 일반 교과목가 아니라 요리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이에 따라 조리학과로 진학하였고, 그 이후에 호텔 실습을 거쳐 호주로 가서 셰프 교육과 실습을 마쳤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 서울에 자신의 음식점을 개업하고 꾸준히 자기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는 젊은 셰프이다. (편집자 주)

 

Q1 정 대표님, 학창 시절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A1 저는 공부에 대한 취미가 전혀 없던 아이였습니다. 오죽하면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을 할 수 있는 ‘요리’ 자격 시험에서조차 한식조리기능사 실기시험은 단번에 합격했는데, 필기시험은 10번을 넘게 떨어진 것 같아요. 어머니는 제가 한심해 보였는지, 직접 본떼를 보여 주겠다며 직접 한식필기시험을 공부하시고, 보란 듯이 자격증을 제 책상 위에 올려 놓으시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주눅이 들거나 자존심이 상하거나, 이번에는 꼭 붙어야지 하는 마음이 안 생겼어요. 다음에는 붙을 수 있겠지 하면서 계속 시험을 치렀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Q2. 대표님은 어떻게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지요?

A2  저는 학교 다닐 때에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이런 과목보다는 예체능적인 것, 가정 시간, 아무튼 예체능 분야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중학교 때에, 제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기 때문에 제가 학교수업이 끝나고 갈 데가 없으니까, 학원을 다니게 됐었는데 그때 제과제빵반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제가 한 요리를 아버지께서 출근하실 때 드시고 가는 모습이 너무 기분 좋았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좀 더 배워볼까 하는 욕심이 많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렇게 중학교 시절에는 제빵을 위주로 공부를 많이 했었고,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제과제빵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한 번 더 배워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한식을 배우러 다녔고, 그 외에 중식과 양식도 배워보고 이렇게 하면서 고등학교 때 진로를 정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대학교 진학해서 좀 더 전문적으로 양식을 한번 배워보자고 생각을 했습니다. 대학교에 진학을 하고, 호텔 실습도 나가고 또 좋으신 스승님을 만나서 많이 배웠습니다.

 

Q3 대표님은 대학교 때 호텔 실습 중에도 어려움을 많이 겪으셨을 것 같아요. 어떠셨어요?

A3 저희는 보통 호텔로 많이 실습을 많이 나가는데, 저는 21살쯤에 서울 청담동에 있는 호텔로 실습을 나갔습니다. 그때 저는 호텔에서 요리만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가보니까 정말 제가 생각한 것과는 너무나 달랐어요. 옷은 다 된장, 고추장으로 범벅이 되어버리고 손도 설거지를 하도 많이 해서 다 불어 있고, 감자 요리를 할 때도 감자를 다 깎고 해야 하니까 정말 힘들더라구요. 그때 많이 힘들었어요. 그러나 이제는 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런 것까지가 다 과정이었구나, 내가 이제 손님한테 음식을 플레이팅을 해서 대접해야 할 때 알아야 할 필요한 과정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제가 좋아하는 일이니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서 버티고 버티면서 꾸준히 했습니다.  

 

Q4 그 후에 대표님은 호주로 가셨지요? 그에 대한 말씀을 좀 해주세요.

A4 대학교를 졸업을 한 후에 호텔에 취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제 주변 선배들을 보면 유학파 셰프님들이 꽤 많았어요. 그러다가 마침 2018년도 동계올림픽 때 저희 호텔이 지정 숙소로 되는 바람에 각 나라 선수들이 저희 호텔에서 식사를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각 나라별로 뷔페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나라별로 식사 내용이나 방식이 다 다르다 보니까 정말  배우는 게 많았고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그 나라에 가서 문화도 배우고 싶고, 여행도 한번 해보고 싶고, 이런 경험을 많이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동계올림픽이 끝나고 나서 바로 호주로 갈 준비를 하게 되었어요. 원래는 군대 전역하고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했었는데 두 번 정도 떨어졌어요. 그렇게 꿈을 접고 있다가 다시 호주에 대한 꿈이 꾸고 결국 호주로 가게 되었지요.

 

Q5 대표님, 호주에 가셔서 처음에는 고생을 많이 하셨을 것 같습니다.

A5 저는 당시에 정말 영어도 A부터 Z까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칼가방 하나 메고  이력서 하나 뽑아서 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호주 멜버른이라는 곳을 갔는데, 가서 방을 구하고 직장도 구해야 되는데,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되니까 어떻게 될지 모르겠고 정말 막막했었어요. 그래서 일단은 한인 커뮤니티에 문의해서, 방을 먼저 구했고, 그 후에 한 일 주일 정도는 그 도시 여행을 많이 했어요. 도시를 다니면서 먹어보고, '내가 과연 이곳 어느 레스토랑에 가서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지만 일단은 부딪쳐보자라는 생각으로, 정말 칼가방 하나 메고 이력서를 돌렸습니다.

 

Q6 대표님, 영어 때문에 어려웠던 점도 많으셨지요?

A6 우선 제가 영어를 잘 하지 못해서 어려움이 많았어요. 현지인들이 저에게 이런저런 말을 할 때 몸짓을 통해 간신히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제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또 말을 못하니까 대답을 못했어요. 그게 제일 어려웠어요. 한편 재미도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처음에 겁도 없이 한인 레스토랑이 아니라 외국 레스토랑으로 갔어요. 제가 호주 원햇 레스토랑에 가서 요리를 했었는데, 그때도 인도 셰프, 멕시코 셰프, 태국 셰프, 일본 셰프 등 여러 국가에서 온 셰프들이 있으니까 다 영어로 소통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제일 낮은 단계인 키친 핸드, 즉 설거지만 하는 그런 단계에서 일을 했어요. 그러면서 거기 셰프들이 일하는 모습이나 언어나 스킬이나 이런 걸 옆에서 보면서 많이 배운 것 같아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나에게 저거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라고 말하고 싶은데, 영어로 말을 못하고 그냥 혼자 그렇게 생각만 하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일과 영어 공부를 병행하면서 이제 영어로 말을 어느 정도 하고 들을 수 있겠다 생각할 정도가 됐을 때, 담당자에게 제가 한국에서 요리를 했었고, 일을  맡겨 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렇게 허락을 받고, 제 칼을 꺼내 들고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고, 다른 나라 사람들한테도 인정을 받게 되었어요. 그때 영어를 조금만 미리 더 공부를 했었더라면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듣고 싶은 말을 다 들을 수 있을 텐데, 그리고 그랬더라면 호주에서 생활하는 동안에 제가 상상한 것보다 더 재미있게 일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7 대표님, 호주에서 지내는 동안에 즐거웠던 추억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A7 호주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가서 1년 있었을 때, 만약에 1년을 더 연장하고 싶다면 지방 도시가 아닌 곳에서 88일 동안 농업이나 기타 다른 일로 취업해서 1년을 더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외국인들과 사는 게 너무 좋고, 호주의 문화도 너무 즐겁게 느껴져서 1년 더 머물고 싶은 마음으로 농장을 선택했었는데요. 딸기 농장에 가서 딸기를 따는 일을 했어요. 그 일은 아침 새벽 5시에 시작이에요. 4시쯤 일어나 5시까지 출근해서 일하고 오후 2시쯤 퇴근하거든요. 그리고 타이완이나 호주, 일본 친구들이 다 모여서 딸기 따서 번 돈으로 마트에서 장을 봐서 음식을 준비해서 함께 모여서 먹으면서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그 친구들과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있어요. 한국에서는 그냥 일만 하다가 호주에서 일도 하고 여행도 다녔던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주변에서 누가 호주를 간다고 하면 추천하고 싶습니다.

 

Q8 대표님, '그리고 문래'라는 이름이 참 특이합니다. 뭔가 깊은 생각이 있을 것 같은데, 왜 '그리고 문래'라고 이름을 지으셨나요?

A8 '그리고'라는 말은 문장 따위를 이어 연결해주는 단어잖아요? '그리고'라는 말이 그래서 제 음식과 손님들이 제 음식을 먹었을 때 서로 ‘연결되는 것’이라고 봐서 '그리고'라는 단어를 썼어요. 그래서 손님들이 제 음식을 먹었을 때 제가 추구하는 이런 문화나 커뮤니티로 연결되는, 그리고 손님들이 음식을 먹고 돌아가실 때에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시는 모습, 제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요리를 하고 제 요리를 손님들이 먹으며 행복해 하시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의미상으로 손님들과 내가 연결이 될 수 있는 그런 단어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그리고 문래동에 있는 문래 음식점,' 그래서 '그리고 문래'로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Q9 대표님 지금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부모님 도움도 없이 이렇게 음식점까지 혼자 힘으로 내셨다는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A9 지금 현재는 한식 퓨전 요리를 하고 있지만, 추후에는 한식 퓨전 요리가 아니고, 제 전공을 살려서 양식 분야로 브런치 가게를 하나 하고, 그 다음에 또 다음에는 중식을 하고, 이런 식으로 가정식 요리나 다른 나라 요리 문화와 그리고 저만이 할 수 있는 요리, 이런 요리를 좀 더 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백종원 선생님처럼 그런 다양한 브랜드를 가지고, 대중들이 제 음식을 먹었을 때 비싼 음식보다도 맛있고,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런 요리를 하는 게 제 큰 꿈입니다.

 

Q10 대표님, 셰프나 이런 분야의 직업을 원하는 청소년들에게 조언 말씀 부탁드립니다.

A10 옛날에는 우리가 정말 배가 고파서 갖게 된 직업이 요리사라고 많이 말했었는데, 요즘에는 시대가 많이 변해서 셰프들이 방송 프로그램에도 나오고, 관련 예능 프로그램도 많이 생기다보니까 요즘 젊은 친구들은 셰프란 직업을 대단히 멋있게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앞에서 예쁜 요리만 하고 멋있게 플레이팅을 하는 것을 보게 되니까 백조가 물에서 헤엄치듯이, 물 속의 발은 엄청 움직이고 있는데 겉보기에 무척 우아해 보이잖아요? 그런 건 사실 방송에서만 그렇게 보여지는 거예요. 그렇게 생활을 한 10년 이상 하고 있는 요리사로서 제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면 정말 힘들어요. 왜냐하면 항상 바뀌어가는 요리 트렌드도 있고, 두 손을 갖고 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요리 스킬도 많이 필요한 직업이고, 또 의식주 중에 '식'을 담당하고 있는 역할이라서 남들이 쉴 수 있는 날, 토,일요일이나 공휴일은 쉬지 못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말하자면, 정말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날이 많을 거고, 이것이 한계까지 갔을 때 정말 힘들 것 같아요. 결국 꾸준히 하는 것, 자신이 정한 길을 꾸준히 했을 때, 그래서 나중에 목표를 이루었을 때 0어마어마한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본인 스스로에게 주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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