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장군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바라나니.... 부디 적들을 남김없이 무찌르게 해주소서. 이 원수를 갚을 수만 있다면 한 몸 죽는다 한들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기원한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7년이 지난 1598년 12월, 일본군의 수장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사망하면서 일본군에게 퇴각 명령이 내려진다. 이에 순천에 고립되어 있던 일본 장수 고니시유키나가는 어떻게 하든 조명 연합군을 뚫고 일본으로 퇴각하려고 기회를 노린다.
이 소식은 1597년 12척의 배로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에게도 전해진다.
장군은 왜군을 완벽하게 섬멸하는 것이 이 전쟁을 올바르게 끝내는 것이며, “절대 이렇게 전쟁을 끝내서는 안 된다.”고 굳은 의지를 드러낸다. 그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바라나니.... 부디 적들을 남김없이 무찌르게 해주소서. 이 원수를 갚을 수만 있다면 한 몸 죽는다 한들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기원한다.
임진왜란 7년간 일본은 우리나라의 선량한 백성과 강토를 무참히 짓밟은 적이었고, 이순신 장군 개인적으로도 같은 하늘을 두고 살 수 없는 원수였다. 일본군은 장군이 12척의 배로 명량해전에 골몰하던 때에 충남 아산에 있던 장군의 셋째 아들 ‘면’을 살해한 원수이기도 했다. 영화 ‘노량’은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에도 초점이 맞추어졌는데, 장군은 아들을 잃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아들의 애달픈 죽음을 슬퍼한다. 조선 사람에게 일본군은 절대 살려 보낼 수 없는 존재였다. 전쟁을 끝내는 가장 확실한 대책은 침략야욕으로 조선을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은 그들을 섬멸하는 것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이와 같은 굳은 뜻을 잘 알고 있는 일본군 장수 고니시유키나가는 명나라 도독 진린에게 갖은 뇌물을 바치고,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에게 대패를 안겨 준 일본군 장수 시미즈의 살마군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하면서 필사의 탈출을 꾀한다. 심지어 아들을 잃은 어버이의 여린 마음을 이용하고자 장군의 아들 ‘면’을 죽인 가짜 왜군을 장군에게 보내어 구차한 목숨을 구명하고자 한다.
차가운 겨울 바다 ‘노량’은 죽음의 바다로 바뀐다. (실제로 노량 해전은 겨울 바다에서 있었던 전쟁이다.) 피아간에 엄청난 인명 손실을 내면서 이순신 장군의 지휘로 전황이 조선군의 승리로 기울고, 명나라 수군 부총독 등자룡도 분전하다 전사한다. 이에 전황을 지켜보던 명나라 도독 진린도 조선 수군을 도와 전쟁에 참여한다. 전황이 조선수군의 승리로 완전히 기울 무렵 장군은 북을 치기 시작한다. 북소리는 아주 오랫동안 지속된다. 장군은 그 북소리에 반드시 적을 섬멸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북소리를 들은 조선 수군은 용기백배하며 적을 무찌른다. 한편 그 북소리는 일본군에게는 기를 꺾어 버리는 죽음의 소리이기도 했다. 북을 치던 장군은 어느 순간 적이 쏜 유탄에 맞아 절명하고 만다. 숨을 거두며 그 유명한 말 “나의 죽음을 적이 알게 하지 마라.”는 유언을 남기며 영웅은 숨을 거둔다. 장군은 숨을 거두었지만, 승전의 북소리는 계속된다. 이윽고 어둠을 깨우고 날이 밝는다. 명나라 도독 진린은 승리를 확신하며 장군의 배로 옮겨 타고, 그제서야 장군의 죽음을 확인한다.
2023년 12월 20일 개봉된 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는 개봉된 지 열흘만인 12월 30일 현재 누적 관객수 1위로 281만 명을 달리고 있다. ‘명량’, ‘한산: 용의 출현’에 이어 대한민국 최초로 이순신 장군의 3부작 프로젝트의 마지막 작품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은 영화관 등에 배부된 팸플릿을 통해 ‘드디어 10년간의 이순신 3부작 여정을 마무리’한다면서 ‘그 고단한 싸움이 지나고 한 줄기 여명이 밝아왔듯이 관객 여러분의 가슴 속에도 이 영화가 고단했던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뜻깊은 새해를 기어코 맞이하는 그런 영화가 되기를 염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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