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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보라

- 장영희 교수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고

이종대 | 기사입력 2024/10/17 [10:43]

네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보라

- 장영희 교수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고

이종대 | 입력 : 2024/10/17 [10:43]

작가가 책을 내는 일련의 과정 중에서도 가장 어렵고도 힘들어해 하는 작업은 아마도 책의 제목을 붙이는 일일 것이다. 장영희 작가 역시 책의 제목을 정하는 데 오랜 기일을 두고 고민했음을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이 책의 제목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그녀가 암 투병을 끝내고 2007년 1월에 <샘터>로 복귀하면서 쓴 첫 번째 수필의 제목이기도 하다.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 낸 스스로가 너무나 기특하고 대견해서 다른 게 기적이 아니고 바로 그게 기적이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책이 출판되고 난 뒤에도 여전히 제목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고 했다. ‘그 누구도 생각 못한 멋들어진 제목을 생각해야지’라는 고민은 출판을 앞둔 여타의 다른 문인들도 공통적으로 갖는 고민이 아닐까 한다,

 

  ‘글은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여러 가지 문학 장르 중에서 그러한 특색이 잘 드러나는 장르가 바로 수필이다. 수필을 읽으면 글쓴이의 성품은 물론 관심 분야나 삶에 대한 자세와 같은 것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 책에는 작가가 사물을 지극히 긍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이 책에서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는 다른 사람에게서 보다는 자신을 바라보는 데서 두드러진다. 이 책에 실린 「네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보라」라는 제목의 수필에는 작가의 긍정적인 성품이 뚜렷이 나타나 보인다. 그녀가 어느 잡지와 인터뷰하면서 ‘그냥 인간 장영희, 문학 선생 장영희에 초점을 맞춰 줄 것을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는데 막상 발표된 기사 제목은 ’신체장애로 천형 같은 삶을 극복하고 일어선 이 시대 희망의 상징 장영희 교수‘ 였다고 한다. 이 기사 제목을 보고 작가는 심히 불쾌했다고 한다. 작가는 1급 신체 장애인이고 암 투병을 하지만 한번도 자신의 삶이 천형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영어 속담 ’네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 보라(Count your blessings)’ 을 인용하면서 자신이 받은 삶의 축복에 대해 열거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은 ‘천형’은커녕 ‘천혜(天惠)’의 삶이라고 말한다.

 

   한편 「나는 아름답다」라는 수필에서는 항암치료를 받을 때 머리털이 빠져 돈짝만큼 휑하더니 치료가 끝나자 포실포실 아기 새 솜털처럼 돋아나 전혀 표시 안 나게 되었다는 데서 새삼 그 아름다움에 감탄했다고 말한다. 그만큼 작가는 어렵고 힘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극복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이러한 긍정적 인격 형성의 계기를 어린 시절의 추억에서 찾고 있다. 어느 날 수업이 일찍 끝나 혼자 집 앞에 앉아 있을 때 깨엿장수 아저씨가 깨엿 두 개를 주면서 “괜찮아”라고 했던 말이 마음에 남으면서 ‘이 세상은 좋은 친구들이 있고 선의와 사랑이 있고 ‘괜찮아’라는 말처럼 용서와 너그러움이 있는 곳’이라고 믿기 시작했다고 한다. 세상 사는 일이 만만치 않다고 느낄 때, 죽을 듯이 노력해도 내 맘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그녀는 마음속에서 작은 속삭임을 듣는다고 한다. “‘괜찮아!’ 조금만 참아, 이제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교수로서 작가의 긍정적인 태도는 이 책에 실린 첫 번째 수필 「다시 시작하기」에 잘 드러나 있다. 작가는 미국에서 완성된 학위 논문을 도둑질 당하는 바람에 깊은 절망에 빠졌다가 내면 깊숙이에서 들리는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다시 시작할 수 있어.’’라는 목소리를 듣고, 1년 후 다시 논문을 끝냈다고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자신의 경험을 대학에 불합격한  학생에게 “인생이 짧다지만 ‘다시 시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1년은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습니다.” 말한다.

 

  그의 또 다른 수필 「무릎 꿇은 나무」을 보면 제자들에도 삶의 긍정적 자세를 갖기를 권하는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장 교수는 결혼하고 5년만에 파경을 맞은 사랑하는 제자 ‘민숙’에게 ‘로키산맥 해발 3,000미터 높이에 수목 한계선 지대의 나무들은 눈보라 때문에 곧게 자라지 못하고 마치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한 채 서 있는데, 세계적으로 공명이 잘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 꿇은 나무로 만든다’고 말해준다. 그러면서 제자에게 말한다. ‘너는 이제 곧 네 몫의 행복으로 더욱더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기 위해 연습을 하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내라고’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희망을 너무 크게 말했나’라고 의문을 던진다. 그렇지 않다. 신체장애와 암 투병 등을 극복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빛이 들어오는 독 안의 쥐가 그렇지 않은 쥐보다 2주일을 더 사는 것처럼 희망의 힘은 생명까지 연장시키기도 한다.

 

 1급 장애인이면서 교수였고 문인이었던 장영희 교수는 2009년 5월 9일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남긴 희망의 메시지는 여전히 살아 남아 삶의 무게에 지친 우리들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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