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민병준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4/02/12 [10:41]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민병준 (논설위원) | 입력 : 2024/02/12 [10:41]



어디쯤 가고 있을까? 우리 대한민국 축구팀은?

 

요르단과의 경기가 끝난 후 캡틴 손흥민(31세, 토트넘)이 눈시울을 붉히며 인터뷰를 했다. 이제 자신이 다시 대표팀의 일원이 될지 알 수 없다면서, 패배에 대한 질책은 모두 자신에게 해 달라는 캡틴의 말은 온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대표팀에서 은퇴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박지성(전 맨유)은 29세에 국가대표에서 은퇴하지 않았던가?

 

어쨌든 이렇게 아시안컵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대한민국은 4강에서 내딛던 걸음을 멈추었다.

 

어쨌든 이렇게 아시안컵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대한민국은 4강에서 내딛던 걸음을 멈추었다.

 

이번 18회 아시안컵은 역대급으로 이변이 많은 대회로 기억될 것이다. 우승 후보로 손꼽히던 5개국, 일본, 이란, 한국, 호주, 사우디아라비아는 8강전부터 차례차례 짐을 쌌다. 결국 결승에서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4강전에서 한국을 격파한 요르단과 이란을 이긴, 전 대회 디펜딩 챔피언인 카타르가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자타가 인정하는 우승 후보 1순위 일본은 당당하게 카타르에 입성했다. 일본은 유럽파 선수들만 20명이었으며, 각종 국가 대항 평가전에서 독일 국가대표를 격파하는 등 무패를 달리고 있었다. 따라서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총 우승 5회로 아시아 최강의 면모를 과시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우리 한국 또한 ‘꿈의 세대’로 불리는 역대급 멤버를 자랑하고 있었다. 유럽파 손흥민(토트넘),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황희찬(울버햄튼)을 앞세워 무려 64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겠다는 야망을 숨기지 않았다. 그때까지 프리미어 리그에서 손흥민, 황희찬이 각각 12골, 10골을 넣는 등 절정의 득점력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이강인은 프랑스 명문 팀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어, 가장 강력한 공격 라인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게다가 이탈리아 세리에에서 나폴리를 우승으로 이끈 후, 독일의 분데스리가 최고의 명문 바이에른 뮌헨에서 수비의 핵으로 활약하고 있는 김민재를 보유한 한국은 우승 후보로서 전혀 손색이 없는 팀이었다.

 

축구 전문가와 팬들은 이 대회 최고의 흥행 카드로 일본과 한국의 결승전을 꼽고 있었으며, 두 나라의 국민들 또한 이런 장밋빛 예상을 드러내 놓고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달랐다. 8강전에서 탈락한 일본은 차치하고라도 한국의 경기력은 예상외로 실망스러웠다. 4강까지 진출했다고는 하지만 어느 경기 하나 시원스런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예선 리그 요르단과의 경기에서는 2 대 1로 끌려다니다가 상대의 자책골로 겨우 비길 수 있었다. 더구나 피파 랭킹 130위인 말레이시아와는 졸전 끝에 3 대 3으로 비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선수들이 경기장 분위기에 적응하는 과정이라거나 정신적 각성을 자극하는 예방주사 정도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16강전에서 연장 혈투 끝에 승부차기로, 호주와의 8강전에서는 연장전에서 손흥민의 환상적인 프리킥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른바 ‘좀비 축구’의 탄생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성과가 몇몇 선수들의 개인기와 혼신의 힘을 다한 투혼의 결과임을 간과하고 있었다. 결과가 과정을 가린 것임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4강전에서 만난 요르단은 예선전의 그 팀이 아니었다. 그들은 압박과 역습의 카드로 한국팀의 중원을 마음껏 유린하며, 2 대 0의 완승을 거두었다. 준비한 자와 대책 없는 자의 격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승부였다. 실로 한국 축구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드디어 사망한 좀비 축구! 요르단 아모타 감독은 “상대를 필요 이상으로 존중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한국을 상대로 득점이 가능하다.”라고 선수들을 격려했다고 말했다. 그는 예선전 맞대결 경험은 물론 5경기에서 이미 8골을 실점한 상대팀에 대한 분석, 그에 대한 대책 및 작전을 수립하고 경기에 임했던 것이다.

 

이에 비해 클린스만 감독은 무대책의 축구, 흔히 말하는 ‘해줘, 축구’를 고수했다. 전까지는 유럽파 4인방의 처절한 헌신과 개인기로 간당간당 버텨온 결과를 자신의 작전이라 덧씌우고, 요르단전에 임했으니 그 결과는 참담했다. 더구나 경고 누적으로 인한 김민재의 부재에 대한 대책이란 것이 김영권, 정승현 등으로 대체하는 정도였다. 개개인에 대한 장단점, 스피드, 빌드업 능력, 몸싸움 능력 등 가장 기본적인 것도 고려하지 않은 것 같았다. 김민재를 대체할 수비수가 없다면 협력 수비를 펼쳤어야 했다. 우선 공격 라인과 수비 라인을 좀 더 촘촘하게 구축해서 공격과 수비 간에 원활하게 소통하고, 리바운드되는 공에 대한 점유율을 높이는 축구를 구사했어야 했다. 또한 공격 라인을 뒤로 물려 수비를 굳게 하고 역습을 노렸어야 했다. 우리에겐 최강의 스프린터 손흥민이 있고, 유연한 드리볼과 어시스트 능력을 갖춘 이강인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클린스만은 정반대의 축구를 구사했다. 공격진과 수비진의 거리가 거의 70m나 되고, 수비수들이 발이 느려 중원을 상대의 마당으로 제공했다. 또한 수비수들의 볼 키핑 능력이 떨어지고, 일대일 돌파를 하지 못해 불안정한 상태에서 패스를 남발했다. 더구나 연속된 연장 혈투로 인해 선수들은 모두 지쳐 있었다. 그런데 감독은 선수들을 교체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손흥민과 이강인, 황희찬은 철저하게 고립되어 답답한 경기를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정확히 간파한 요르단 공격수들은 한국을 압박하며, 패스 미스를 유발하게 하고 이를 가로채 득점하는 작전을 취했다. 그들에겐 무사 알타마리, 야잔 알나이마트, 마흐무드 알마르디 등의 걸출한 스타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유자재로 한국팀을 농락하듯 기량을 뽐냈다. 이에 비해 한국은 단 한 개의 유효 슈팅도 기록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3승 3무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던 요르단, 우리보다 피파 랭킹이 64위나 낮은 팀에게 2 대 0이라는 스코어는 물론 내용 면에서도 참담한 패배를 당한 것이다.

 

한국 축구의 추락이었다! 끝끝내 우승을 기대하며 밤을 지샌 국민들에게는 너무도 잔인한 결말이었다. 기대가 없었으면 실망도 하지 않았을 것을..., 하여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말을 절실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새벽이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한국 축구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심각하게 분석해 보아야 한다. 랭킹 130위 말레이시아와도 간신히 비기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반드시 고칠 것은 고치고, 바꿀 것은 바꾸어야 한다. 바로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하여 추락한 한국 축구를 다시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게 해야 한다.

 

급한 대로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해 보자.

 

우선 감독을 교체해야 한다. 선수로서의 클린스만은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 멤버로서 우수한 기량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탁월한 선수라고 해서 뛰어난 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르헨티나의 전설 마라도나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실로 선수와 감독으로 양수겸장의 능력을 보여준 예는 선수와 감독으로 각각 월드컵을 차지했던 ‘영원한 리베로’ 독일의 베켄바워나 선수로는 월드컵 우승을, 감독으로는 유럽 챔피언스 리그를 제패했던, 프랑스 ‘아트 사커’ 중원의 지휘자 지단 등이 있을 뿐이다. 혹시 클린스만도 이런 명감독의 뒤를 이으려는 것일까? 어림도 없는 얘기지만 그의 최근의 태도를 보면 전혀 근거 없는 추론이 아니다. 그는 일본의 8강 탈락을 거론하며, 한국의 4강 진출을 자신의 실적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그는 사퇴설을 일축하며, 한국으로 돌아가 분석하고 발전 방향을 모색해 보겠다고 말하고 있다. 월드컵 준비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그는 결코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스스로 사퇴하지 않고 해임될 경우 해약금을 받을 수 있는데, 약 80억 전후가 될 것이라 한다. 축구협회의 고민거리로 남을 것 같다. 하지만 어떻게든 바꾸어야 한다. 일반 관중도 뻔히 알고 있는 이론도 모르는 수준으로 평가되는 그다. 감독을 바꾸어 면모를 일신하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아울러 수비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 김민재와 같은 수비수를 당장 길러낼 수 없으므로, 수비수끼리의 협력 수비, 수비수와 미드필더 간의 협력 및 수비 공격의 간격 조절 등 가능한 모든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선수 발굴도 중요하다. K 리그 경기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각 포지션 별로 선수를 발굴하여, 적재적소에 뽑아 써야 하며, 주전 선수가 지쳤을 때나 부상을 당했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4강 중 3팀이 중동이다. 이는 석유 자본을 바탕으로 과감한 투자를 한 결과임이 확실하다. 우리도 투자를 통해 이익을 창출하고, 그 이익을 다시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한국 축구는 지금 추락하고 있다. 이제 아시아의 어느 팀도 한국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다시 날아오를 수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지도자를 바꾸고 축구인들의 지혜를 모아 함께 노력하면 다가오는 월드컵에서 힘차게 솟아오르는 한국 축구의 위상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