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서 한국과 한류에 대한 세계인들들의 관심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한국의 대중문화와 음식에 대하여 알고 싶어한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역사, 특히 한국의 독립운동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는 미국 출신의 한 대학원생이 있어서 화제이다. 먼데이 타임스는 이 특별한 대학원생 카밀라 드루(한국명, 한행운)와 함께 독립운동가 최재형기념사업회를 찾아 문영숙 이사장과 한국의 독립운동사, 항일운동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Q1. 먼저 카밀라 드루, 한행운 님은 누구신지 말씀해 주세요. A1.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한행운입니다. 한국에서 고려대학교 한국사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학생입니다. 학교 다니면서 방송일과 번역 활동 그리고 가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말을 배운 지 12년 됐고요, 독립운동에 대해 공부를 하고 싶어서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Q2. 최재형기념사업회를 찾은 이유는 무엇인지요? A2. 저는 어릴 때부터 한국의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는 한국에 와서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요. 반크에서 한 문화재단과 같이 사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 문화재단 대표님이 최재형 상을 받으셨어요. 그리고 그때 제가 반크에서 최재형 선생님에 대한 영상을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했었는데, 그때 우연히 독립운동가 최재형 자료집 요약본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책을 본 순간, 제 연구를 이런 식으로 해야겠다, 이 책에 대한 내용으로 논문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제가 외국인이다 보니까 모르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그리고 정말 대단한 분이신 최재형 선생님에 대해서 여쭤보려고 최재형기념사업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Q3. 행운 님은 우리나라 역사, 특히 항일운동사와 최재형 선생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요? A3. 저는 할머니 때문에 한국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되었습니다. 할머니께서 한국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이 많으셔서, 저에게도 한국 독립운동사에 대한 책을 선물해 주셨고, 그때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최재형 선생님은 저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독립운동을 하셨는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그 독립운동을 전개하셨는지에 대해 배우면서 정말 영감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끝까지 독립운동을 후원하시고, 함께 전개하려 하는 그 모습이 정말 훌륭하시다고 생각해서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님의 삶을 연구해 보고 싶었습니다.
Q4. 이사장님, 그러면 최재형 선생은 어떤 분이신지요? A4. 최재형 선생은 물론 독립운동가이기도 하지만 다방면에 엄청난 민족적인 힘을 발휘하신 분이라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는 불우한 환경에서, 정말 바닷가에 쓰러져서 천운으로 러시아 선장 부부에게 구해지지만, 그 만남이 더 큰 역사를 이루게 되지요. 최재형 선생은 러시아 선장과 함께 6년간 전 세계로 항해를 하게 됩니다. 그 항해를 통해서 최재형 선생은 상술이나 인성, 고난을 극복하는 힘을 갖추게 됩니다. 그런 어떤 저력이나 이런 것들을 바탕으로 최재형 선생은 나중에 블라디보스톡에 돌아와서, 한인들을 위한 애국 애족 정신으로, 통역으로부터 시작해서 한인들의 리더로 군수까지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또 항해를 하면서 취득한 상술을 활용해서 동양의 카네기라고 할 정도의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되셨어요. 최재형 선생은 그 부를 혼자 누리지 않고 우리 동족들과 함께 더불어 잘 사는, 그런 사회를 구현하려고 노력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최재형 선생은 러일 전쟁의 와중에서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드시게 되고, 모든 의병들의 중심점에서 연해주 독립운동의 주도자 역할을 하신 그런 분이세요. 이런 분은 앞으로 많이 알려져야 됩니다. 이렇게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다양하게 조국과 동포들을 보듬어 안으시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희생을 하신 그런 분이 최재형 선생입니다.
Q5. 이사장님, 최재형 선생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안중근 의사 말씀이 또 나오게 되는데, 최재형 선생과 안중근 의사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말씀을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A5. 1907년에 고종이 일제에 의해서 강제 퇴위당하고,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 해산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빨리 해외에 있는 우리 독립운동가 세력들과 손을 잡고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을 펼쳐야 되겠다고 생각하시고, 안중근 의사는 국외로 망명을 하셨지요. 그때 만난 분이 바로 최재형 선생입니다. 최재형 선생은 또 러일 전쟁 이후에 일본에 가 계셨다가 일본의 야욕을 간파하고, 돌아오자마자 독립운동의 뜻을 품고 막 의병을 모집하던 때라서 두 분이 의기투합해서 1908년에 동의회라는 독립운동단체를 조직했고, 거기에 평의원으로 안중근 의사가 참여를 했고, 최재형 선생은 동의회 총장이 됐고요. 그래서 안중근 의사하고 같이 만든 군대가 바로 대한의군이며, 대한의군의 참모 중장이 바로 안중근 의사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최재형 선생 집에서 단지 동맹을 하면서 우리의 목표는 이토오 히로부미를 척살하고 대한독립을 이루는 것이다라고 함께 맹세를 하셨습니다. 그 이후에 바로 하얼빈에 이토 히로부미가 시찰을 온다는 소식을 듣고, 최재형 선생은 대동공보에서 안중근 의사와 같이 하얼빈 의거 모의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최재형 선생은 안중근 의사에게 권총을 사주고 자신의 집에서 사격 연습을 하게 하셨고,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으로 가서 아시는 바와 같이 그 거사에 성공합니다. 안중근 의사가 돌아가신 후에도, 최재형 선생은 안중근의 가족들을 돌보신 걸로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
Q6. 이사장님, 최재형기념사업회가 하는 일도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A6. 2010년에 기업을 하시는 김창송, 김수필, 박춘봉, 전상백, 이 네 분이 그쪽에 처음으로 여행을 가셨다가 최재형 선생에 대해서 듣고 너무 감동을 받으셔서, 여행에서 돌아와서 바로 이듬해에 최재형 이름을 딴 장학회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2015년에 사단법인으로 만들었어요. 그 후 2018년에 현재 국가보훈부에 등록이 된 독립운동가 단체로서, 현재까지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인 최재형 선생을 알리는 일을 계속해왔습니다. 2020년부터는 최재형 상을 시상을 하고 있고 또 매년 최재형 독후감대회를 열어서 최재형 선생을 많이 알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
Q7. 이사장님, 미국인 한행운 님 이야기를 함께 들으셨는데,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A7. (1과2 한행운 소개) 오늘 이렇게 우리 한행운 학생이 최재형 선생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또 반크에서도 일을 했다고 해서, 반크가 중요한 줄이 된 게 오늘 너무 새삼스럽고, 또 김준일 이사장님이 최재형 상을 받으셨는데, 그 김준일 이사장님으로부터 이 최재형 자료 요약본을 보고 또 이분에 대해서 논문을 써야 되겠다고 생각했다는 우리 한행운 학생에게 정말 큰 박수를 보내고 싶고 또 이렇게 미국인으로서 최재형 선생에 대해 연구를 해보겠다고 하는 생각을 한 자체가 우리 기념사업회로서는 정말 반갑고 고맙고 앞으로 큰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또 코리안디아스포라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최재형 선생을 논문 주제로 정한데 대해서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9 이사장님의 한행운에 대한 소감) 그래서 미국인인 한행운 학생이 최재형 선생 논문을 발표를 한다는 것 자체도 우리의 자랑이고 또 그만큼 특별한 일이 되겠습니다.
Q8. 지금까지 두 분 여러 가지 말씀을 나누셨는데, 한행운 씨는 말 그대로 오늘 행운인 것 같습니다. 오늘 이사장님을 뵌 소감과 앞으로 계획을 좀 말씀해 주세요. A8. 이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전해 드려야 될지 정말 너무 영광이었습니다. 저는 이 자리가 꿈 같았습니다. 저는 이 논문을 정말 열심히 쓰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계획은 아직 희미하지만 박사 논문도 최재형 선생님을 주제로 하고 싶고 그리고 나중에 독립기념관에서 연구원 활동도 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먼데이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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