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Undefined index: HTTP_ACCEPT_ENCODING in /home/inswave/ins_news-UTF8-PHP7/sub_read.html on line 3
길을 만들며 가리라, 강호생 화백 인터뷰:먼데이타임스
로고

길을 만들며 가리라, 강호생 화백 인터뷰

민병준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3/11/19 [13:17]

길을 만들며 가리라, 강호생 화백 인터뷰

민병준 논설위원 | 입력 : 2023/11/19 [13:17]

 



Q) 안녕하십니까? 먼데이타임스입니다. 오늘은 한국화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시고 꿋꿋하게 자신의 세계를 개척하고 계시는 강호생 화백님을 찾아서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붓을 사용해서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나타내시면서 개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먼저 선생님 스스로 자신을 간단하게 소개해 주시죠.

A) 저 같은 경우에는 언제나 수묵을 통해서, 무엇보다도 작품 내에 여백이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작품에 임하고 있습니다. 또, 그 속에서 늘 생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작품 안에서의 생명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Q) 예. 선생님은 수묵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여백’의 의미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여백’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A) 그동안 글도 여러 번 썼고, 거기서 찾아볼 수 있듯이 우선 ‘여백’은 상대적 개념이겠지만 텅 빈 충만, 가벼운 중량감, 채워진 빈자리, 숨 쉬는 공간, 이렇게 여백을 보고 있습니다. 채워지지 않았지만, 가만히 보면 이미 채워져 있음을 그림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따가 그림을 통해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Q) 동양 철학과도 관련이 있겠네요?

A) 그렇죠. 도교, 유교, 불교 등에서도 여백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볼 수 있고, 이것이 기독교에서도, 성경에서도 있어요. 뗄 수 없는 상보관계 등을 볼 수가 있죠.

 

Q) 선생님의 그림은 반복되고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늘 새로운 분야를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변화 과정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A) 처음에는 보다시피 1982년 대학 1학년 때, 그전부터도 그림은 끊임없이 그렸지만, 처음에는 화선지 위에 필선, 붓으로 그리는 것으로 시작했지요. 그러다가 이게 다 중요한 게 아니다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최근에 하고 있는 채묵과 먹을 통해서 물의 압력으로 그림을 그려내는 것을 한 지도 참 오래되었죠. 

 

Q) 그럼 과학성도 상당히 들어갔겠네요?

A)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물론 회화는 과학이지만 그것은 하나의 성스러운 것, 화가의 인간적인 마음을 마치 신의 마음과 가까워지도록 묘한 조화를 부린다. 이 세계가 회화다, 그림이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저도 작가로서 다빈치를 좋아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겠죠. 그렇지만 회화라는 것이 무엇인가? 총체적으로 한번 정리되는 말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Q) 그러니까 알고 그리는 것과 그냥 그리는 것과 큰 차이가 있죠?

A) 맞습니다. 전혀 다르죠.

 

Q) 선생님께서는 각종 행사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셨는데, 그림을 평가할 때의 기준이 무엇인가요? 

A) 많은 심사위원들, 보통한다는 말이 있죠. 그림뿐 아니라, 장르가 전혀 다른 무용, 음악, 연극 어떤 걸 봐도, 그림으로 보면 2, 3초면 좋은 그림이구나, 잘 그린 그림이구나, 행사에 치중한 거구나, 형식에 치중한 거구나, 아니면 내용에 충실한 거구나. 이런 게 보면서 2, 3초 안에 다 끝나요. 왜냐하면 아는 사람은 대번에 딱 알아요, 때문에 심사할 때도 딱 보면 테크닉으로 그린 건가 아니면 내면적 완성도를 향해 갔는가? 그런 걸로 볼 때 저는 테크닉도 중요하고, 아까 잠깐 얘기했듯이 내용을 담아낼 수 있는 형식적 그릇이 제대로 되었느냐? 이것이 없으면, 내용이 예를 들어 보약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담아낼 수 있는 뭐 황금 그릇이거나 천한 뚝배기라든지 어떻게 되든 그걸 담아낼 수 있어야 되잖아요? 근데 그것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없으면 완성이 안 돼요. 그러면서 형식적 틀을 갖추고 있느냐? 더군다나 아무리 뚝배기라도 이게 보약이냐 국물이냐 다르잖아요? 그것을 순식간에 보죠. 

A) 예. 내용과 형식이 잘 어우러져야 좋은 작품이겠네요.

 

Q) 선생님께서는 평소, “취향의 문제는 타협할 수 있지만 원칙의 문제에서는 타협하지 못하는 성격으로 홀로되기에 익숙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지켜야 할 원칙은 무엇입니까?

A) 그렇습니다. 원래 원칙, 진실의 길은 고독하잖아요? 아주 너무 고독하고 힘들고 그래서 저도 어떤 때 작품 하면서, 여기서 딱 앉아 있으면 말 그대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게 용해되어서 흘러내린 살과 뼈와 마디까지, 그러한 아픔과 슬픔과 고통이 있어요. 그런 것들이 버무려져서 작품들이 나와요. 그러다 보니 누가 그런 것들을 좋아하겠어요? 그런데 그 속에서 엑기스, 그 본질을 찾아내게 돼요. 바로 이 원칙에 대한 원칙이라는 것은 진실, 진리이거든요. 본질은 이런 거예요. 우리가 어떤 회의가 있는데 그 회의에 어떤 그 원칙을 담아 놓잖아요? 근데 그것을 자기 취향의 문제로 계속 주장하다 보면, 처음에 원칙이라는 법 자체를 무시한 자기모순에 빠지는 거죠. 마찬가지로 제가 얘기하는 이 원칙에 대한 것은 타협, 그 자체가 불가능한 거다. 취향에 대한 문제는 어디까지나 내 의견을 내놓고 할 수가 있어요. 근데 원칙, 본질이라는 것을 그렇게 하다 보면 본질 자체를 모를 수도 있거든요. 그것을 의도적으로 피한다는 것은 작가들도 자기모순에 빠지거나 자기 부정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백이라는 것은, 그리지 않는 게 그림이다. 그것은 본질적 차원을 차원을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원칙은 타협할 수가 없다. 본질 자체는,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에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그거다. 그것이 작품이다. 이걸 생각해야 되는데, 너무 사람들이 기교, 테크닉, 문체 등을 중시하여 속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Q) 일반적으로 예술가, 특히 순수예술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순수예술의 신장을 위해 국가 혹은 지자체에서 추진해 주기를 바라는 정책이 있을까요? 

A) 그것은 이렇게 비유를 해볼까요? 예를 들어 기획자는 자기가 책임감도 있고 무언가 보여 주고 싶어서 많은 품목들을 진열해 놓기를 바라죠. A라는 행사가 있는데 그걸 맡은 사람이 지자체나 그런 데서 돈을 받고 행사를 하잖아요? 그럼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고, 시각적인 풍성함으로 어필을 하든지, 그것이 마치 자기가 이룩해 놓은 결과물로 자랑을 하려고 한다고요. 그러다 보니 양적으로는 풍부하지만 실제 질은 아주 천해요. 그런 게 전국적 행사가 죄송하지만 거의 저는 90% 이상이 된다고 봐요. 왜냐하면 제가 그 작품과 현장에서 가보면 온몸으로 느껴요. 무슨 말씀이냐 하면 양적으로 품다 보면, 예를 들어 미술 하나로 보면 이러한 사람 저러한 사람, 욕먹기 싫으니까 말이 기회균등이지 이건 예술을 죽이는 일이에요. 다시 말하면 거기서 독특한, 아니면 그야말로 좀 더 전문적이고, 자기 연구와 자기 작품에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선별적으로 분류해서, 거기서 집중 육성을 하는 게 사실은 개인도 개인이지만 한 도시가, 한 나라가 사는 거거든요. 사실 이 분배주의는 아시다시피 그 배경은 공산주의에요. 자유주의가 아녀요. 공동 분배, 마치 그것이 공평한 것처럼 이 제도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는 이 대한민국 현실, 저는 아주 괴로워해요. 그러다 보니 이러한 공동 분배 식의 행사, 지자체들의 마인드, 이런 건 하지 말아라. 저는 아주 강력하게 욕을 얻어먹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예전부터 주장해왔어요.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 거기 끼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 원래 아까도 말했듯이 진실은, 진리는 그렇게 많지가 않아요. 많을 수가 없는 거예요. 백 명 중 한 사람이 진리, 정답일 수도 있고, 99명이 틀리거나 다를 수가 있죠. 그래서 원래 민주주의가 진리를 죽였다. 이런 얘기가 있잖아요? 다수결의 원칙, 많이 손을 든다고, 그것이 정답일 수는 없다. 양적으로 품었다고 질적으로 완성이 되느냐, 이 문제 아주 간단한 거거든요. 이 하나만 보더라도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이것이 결정이 나야 한다. 그런 차원입니다.

 

Q) 선생님께서는 평소에 사물이나 인물을 잘 알고, 그 대상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을 때 ‘일필휘지’로 그릴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려우시겠지만 원하는 대상을 그리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실 수 있나요?

 (직접 설명하며 수묵 담채화를 그림)

 

Q) 장차 미술, 넓게 예술가로 성장하고자 하는 청소년들에게 특별히 당부하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한 말씀해 주세요.

A) 우리 그림을 꿈꾸는 사람이 많이 있어요. 그런데 뭐 하나를 한다고 하면 쉬운 게 아니잖아요? 예전 학교 스승님께서 40명 모여 있는 자리에서 그림을 끝까지 할 사람은 3, 4명밖에  안 된다. 깜짝 놀라서, 아니 이 학교 들어오려고 할 정도면 작가 하려고 들어온 게 아니냐? 아니다. 실제적으로 지금 작품을 지속적으로 하는 사람은 거의 한두 명이에요, 저를 포함해서. 해봤자 그냥 그룹전에 한두 번 내고, 그건 작품이 아녜요. 그래서 그런 걸로 볼 때 한두 명. 이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꿈나무들이 작품을 하려면 지속성을 가지고 해야지 내 꿈만 가지고서는 나중에 갭이 생겨서 그림을 그리려고 왔지만, 나중에 직업이 거의 바뀐다, 제 동료들이 그래요. 한두 명이기 때문에 거의 90퍼센트 이상 거의 다른 직업을 갖게 된다. 무엇을 하려면 철두철미하게 연구를 해야 해요. 결론적으로 늘 하는 얘기지만 작가는 열심히 그림도 그려야 하지만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내가 내 자신에 만족이 없고, 허하잖아요. 그림만 그린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테크닉만으로는, 마음의 전달이 소홀하면 기교는 눈에 띄게 드러난다. 즉 테크닉만 동동 뜬다. 그림을 그린답시고 그려댄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러나 화불리수라고 그림은 손을 떠나서는 아니 되니,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공부도 게을리하면 안 된다. 작가한테 눈높이를 낮춰라. 뭐 대중의 눈높이를 요구하는데 난 싫어해요. 작가가 이렇게까지 나름대로 고민하고 고생하는데, 일부 작가들을 포함한 일반대중들을 보면 낮은 곳에 있는데, 높은 수준에 올라간 작가들을 낮은 곳까지 내려서 눈높이를 낮춰라? 이 사람들이 공부해서 갭을 좁히면 되잖아요. 그래서 공부를 해라 바보가 아니지 않냐. 발전이 없고, 미술뿐만 아니라 모든 게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공부해라, 이것이 그림을 잘 그려서 되는 게 아니라 본질적인 것, 그것이 농축되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즉, 내부로부터 부서지지 않으면, 나를 강하고 견고하게 하지 않으면 지속성은 없을 것이다. 그것을 각오한 자는 그림을 시작해라.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 하더라도 나머지는 절대자한테 맡기는 거죠!

A) 예. 감사합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