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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와 함께하는 지적 여행

민병준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4/04/30 [13:26]

《총, 균, 쇠》와 함께하는 지적 여행

민병준 논설위원 | 입력 : 2024/04/30 [13:26]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으니라. (마태오 복음 22장 14절)”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명저《총, 균, 쇠》를 읽다가 만난 이 성경 인용문은 실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놀랍게도 이 성경 구절은 인류 역사 변화의 비밀을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야생 동물들의 가축화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으로, 그 많은 야생 동물들 중 가축으로 선택된 종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며, 운이 좋아 그곳에 살던 인종들만이 선택을 받아 발전된 문명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은 왜 공평하지 못한지, 유럽과 아프리카의 빈부격차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에 대한이 질문에 답하고자 필자는 실로 25년이란 긴 세월을 연구하고 집필했다. 그 답을 정리한 책이 바로 《총, 균, 쇠》이다. 

 

이 책은 출간 즉시 언론과 학계를 뒤흔들었다. 인류 역사에 대한 통찰을 담은 세계적 명저로서 현재 43개 언어로 번역되어 수백만 부가 판매된 글로벌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으며,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워싱턴 포스트)’으로 전 세계에서 널리 읽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대학교 도서관 대출 최장기 1위’ 등으로 선정되었다. 

 

대륙 간 문명의 격차를 거론할 때마다 등장하는 인종 간의 두뇌 차이, 백인이 유전적으로 탁월하여 유라시아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발달된 문명을 가지게 되었다는 ‘인종 간 두뇌 차별설’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후 여러 연구에서도 인종 간 두뇌 차이는 유전학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대륙 간 문명의 격차를 부인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른 지역과 두뇌 수준이 비슷한 지역에 살고 있던 유라시아인들은 어떻게 다른 지역보다 빨리 문명 발전을 이루고, 다른 지역을 정복할 수 있었을까? 이때 총, 균, 쇠는 어떤 역할을 한 것일까?

 

저자는 민족 간, 대륙 간에 드러나는 문명 발달의 현저한 차이는 바로 지리적 위치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그 근거를 대략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인류가 먼저 등장한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먼저 발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라면 이곳에서 인류가 가장 먼저 정착했을 것이고, 가장 빠르게 발전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느 지역이 발전하려면 많은 구성요소와 이해관계의 성립이 필요한데, 아프리카는 그렇지 못했다. 원시사회의 발전은 수렵채집에서 농업으로의 전환이 필수적인데, 이 지역은 그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둘째, 수렵채집에서 농업으로의 빠른 전환이 결국 강한 부족으로 거듭나게 한다. 농업은 식량을 많이 생산할 수 있어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게 된다. 이 많은 인구는 다른 소규모 부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고, 영토를 넓힐 수 있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야생 식물 중 집약적 생산이 가능한 식물이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농업의 발전은 인구밀도를 높이고, 큰 세력을 형성하는 데 유리한 것은 자명한 사실인데, 이러한 식물이 많았던 곳이 바로 유라시아 지역이었으며, 이 지리적 우연이 이후 역사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셋째, 원시사회에서 농업 생산량을 높이는 데 필수적인 것은 가축을 부리는 일이었다. 여기엔 또 절묘하게도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에 부합한다. 즉 동물들과 인간의 결혼에서 행복할 수 있는 짝은 모든 조건을 갖춘 소수의 종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종들은 식성, 사회성 등 여러 항목 중 한 가지만이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그 결혼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 많은 야생 조상종 중 가축화된 포유류는 14종에 불과하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으니라.”는 성경의 비유가 묘하게도 이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그런데 ‘가 축화 후보종’도 유라시아가 가장 많았다. 그중 가축화된 종은 유라시아 13종, 남아메리카 1종으로 대륙마다 매우 고르지 않게 분포되어 있었다.

 

넷째, 식량 생산과 생활 방식 등이 전파되는 속도를 만드는 주된 요인은 각 대륙의 축의 방향이다. 유라시아는 주로 동서 방향, 남북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주로 남북 방향이다. 농업과 가축 등이 번성하고 이동하는 데는 동서 방향이 유리하다. 동서, 수평 지형은 기온이나 강수량 등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수직, 남북 지형은 기온, 강수량 등이 큰 차이를 보이며, 지형적으로도 사막이나 산맥, 바다 등으로 분리되어 있다. 따라서 이 대륙들은 고립된 채 더디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이와 같이 수평, 동서 지형인 유라시아가 총, 균, 쇠를 가지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후진 지역을 침략하여 제국시대를 열어가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역사는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환경의 차이 때문에 다르게 발전했다. 진보된 기술, 중앙집권적 정치조직 등은 인구밀도가 높은 정주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농업 발생에 중요한 작물화와 가축화가 용이한 야생종은 유라시아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곳에 살던 거주자들은 총기와 병원균과 금속을 발전시킬 주도적 위치를 선점했다. 그들의 발전된 문화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주도하게 된 것이다. 결국 유라시아인들은 그들의 우월한 인종적 특징이 아니라 지리적 환경이 우월한 지역에서 태어난 행운으로 보다 발전된 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아, 초대된 동식물이 많았지만 농사에 적합한 종으로 선택된 것이 드물었는데, 그 어려운 선택이 대륙 및 인종의 역사 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어쩌면 끝까지 지적 여행을 함께한 독자들에게도 성경의 이 대목은 그대로 유효할지도 모른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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