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영식 선생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우선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제 고향은 충북 청주시입니다. 청주에서 초, 중, 고를 다 나왔고, 대학도 청주에서 대전으로 통학했습니다. 가족은 부모님과 할머니가 계셨고, 2남3녀 중 장남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야외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공부는 썩 잘하지 못했지만, 대신에 직접 만들고 몸 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산악부 동아리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등반에 취미를 붙였습니다. 그때 이후 자연 속에서 텐트 치고 생활하는 것에 큰 흥미를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고등학교 초기에는 성적도 좋지 않았어요. 60명 중의 58 등을 했으니까요. 머릿속에 오직 산밖에 생각이 안 났습니다. 대통령배 등산대회에 학교 대표로 출전하여 우승한 기억도 있습니다. 충북 운호고 대표로 나갔는데, 손경석 씨가 출간한 “등산백과”를 통째로 암기할 정도로 철저하게 준비했고, 결국 그 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2. 김 선생님, “히말라야 오지 탐사대”는 이름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이런 산악 교육 전문가가 되신 과정에 대해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우선, 중고등학생 시절과 대학생 시절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초등학교 때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야외 활동에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요. 사실 그 때는 입단만 했을 뿐, 대부분 실내에서 이론을 배웠습니다. 중학교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하지만 고등학교 때 좋은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산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산악 동아리를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그때가 본격적인 시작이었습니다. 이후로는 정말로 산을 사랑하게 되어 항상 산을 생각하며 살았으니까요. 이를테면 고등학교 때 등산을 시작하며 읽은 책 중에 우에무라 나오미의 “내 청춘 산에 걸고”를 들 수 있어요. 5대륙 최고봉을 다 등반하며 쓴 책인데 그의 일대기를 읽고, 나도 이런 탐험가가 되고 싶다는 동경을 품게 되었어요. 또 임덕용 선배의 “꿈 속의 알프스”도 읽으며 큰 동기 부여를 얻게 되었지요.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더욱 본격 산을 찾았어요. 공부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줄기차게 산을 찾았습니다. 속리산 문장대를 등산하는 것 등을 뛰어넘어 주로 암벽등반 같은 전문 산행을 했습니다.
3. 그 이후에 학교 교사가 되어서 더욱 이 분야의 전문가로 학생 교육에 힘쓰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말씀도 부탁드립니다. 제가 교직 생활을 시작한 지는 이제 근 30년을 훌쩍 넘겼는데요. 처음에는 보은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이후로는 충주로 거처를 옮겨 충주의 중, 고등학교에서 주로 근무했어요. 1990년 네팔 히말라야 칸첸중가 등반을 시작으로, 1998년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아, 1999년 칸첸중가 북벽, 2000년 에베레스트 및 로체 등반 등에 성공했죠. 특히 제가 충주로 전입하고 난 뒤부터 충주의 자연 환경이 아주 좋아 학생들에게도 많은 산행 지도를 했습니다. 이를테면 산악부 동아리를 신설하고, 대원을 모집했는데요. 일단 아이들에게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취미로 산행 하라고 강조했습니다. 처음엔 5명 정도 입단했는데, 나중에는 10명이 가입했지요. 당시 학교가 산골 분교여서 전교생이 45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많은 수였지요.
4. 선생님께서는 히말라야 오지 학교 탐사대를 16년째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 말씀해 주세요. 저는 2002년 12월, 산골학교였던 중앙중학교 가금분교 졸업생, 재학생, 시각장애 학생 등으로 구성된 히말라야 원정단, “꿈나무원정대”를 결성해 네팔로 떠났습니다. 저희는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해 며칠간 등반 준비를 마치고 베이스캠프로 향했습니다. 당시 대원들 중에는 1급 시각 장애도 있어서 그 아이에게는 일일이 말로 지형 등을 설명해 주어야 했어요. 물론 일반 원정단보다 몇 배는 힘들었지만 저는 그런 강인함을 아이들에게 공유해 주고 싶었어요. 꿈나무 대원들도 힘든 내색 없이 열심히 산행했고, 카라반 트레킹을 시작 한 후 다섯째 되는날 피상마을 도착하였고 여기서 등반을 시작 4,300m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하였고 캠프1을 설치 후 정상등정을 시도하였습니다. 도중에 고산 증세로 탈락 우려가 있는 대원들은 베이스캠프로 돌려보내며, 안전을 최우선으로 산행했습니다. 결국, 당시 참여했던 엄홍길 위원, 중앙 분교 졸업생 명희, 준석, 그리고 저, 이렇게 최후 4명이 정상을 등정할 수 있었습니다.
5. 이후에 아웃도어 교육에 대해서도 선구자로서 다양한 활동을 계획하고, 실천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씀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웃도어 교육은 쉽게 말하면 자연과 전원 속에서 친화력을 기르고, 이를 바탕으로 높은 인생의 의미를 체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요. 특별한 교육관은 아니고,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화랑도에서 실행했던 교육입니다. 독일에서는 반더포겔이라고 유명합니다. 미국에서는 흔히 채드윅 국제학교가 유명하게 거론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대구의 해올 중, 고등학교가 아웃도어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공립 대안학교로 거듭났습니다. 아웃도어 교육은 기본적으로 학생의 수준과 성향에 맞게 과목을 지도하고, 일주일에 최소 이틀 정도는 체험 위주의 학습을 시행하며, 생존, 소통, 성장 등을 주제로 여행도 많이 진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서로 협력 및 소통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고, 무엇보다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습니다.
6. 선생님께서는 시각장애 학생, 비장애 학생, 외국 학생 등과 함께 “꿈나무원정대,” “청소년 희망 찾기 탐사대” 등을 조직하여 히말라야 피상피크와 뉴질랜드 루아페후를 등정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다른 프로그램보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장애가 있는 아이들과 고산을 등정하는 것은 일반 원정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곳은 지형 자체가 매우 험하고, 시청각에 장애가 있으면 서로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보다 더 확실하게 전달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매우 많은 말을 해야 합니다. 특히 1급 시각 장애를 가진 동희와 함께 떠났던 히말라야 원정은 정말 힘들었으면서도, 지금도 가장 가슴 벅찼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후로 진행했던 “청소년 희망 찾기 탐사대” 활동 역시 시각장애 3명, (우리나라) 청소년, 교포 청소년 등으로 약 20명이 구성되었는데, 이때는 뉴질랜드의 루아페후 정상에 도전했죠. 히말라야 고봉 못지않은 험한 산이었고, 해발도 무려 2,797m였습니다. 이 도전 역시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몇 번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 학생을 안전하게 등반시키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죠. 그러나 우리는 다시한번 해냈습니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시각 장애 학생인 경희라는 아이였는데 정상을 등정하면서 결국 울음을 터뜨리더라고요. 이제껏 걱정만을 끼치며 살았는데, 자기 스스로 뭔가 대단한 일을 이루었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좋아하더군요.
7. 최근에 지속가능발전교육, 세계시민교육 등과 관련된 이슈가 많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 특별히 LNT 교육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LNT 교육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요? 최근 기후 위기 문제 등 다양한 국제 환경 변화에 따라 환경 및 자연 교육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기본적으로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잘못된 태도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올바른 자연관을 육성하고자 노력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LNT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자연을 어떻게 느끼고 바라보며 살아갈 것인지에 관한 생각을 늘 하도록 돕는 교육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LNT 프로그램은 자연에 가해지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다양한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그 시작은 미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중점적으로 노력하는 점은 쓰레기 최소화입니다. 우리 일상에서 가장 손쉽게 할 수 있으면서도 제일 중요한 일이 바로 쓰레기를 줄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8. 지금까지 말씀하신 내용을 들으면서, 입시대비교육에 거의 올인하고 있는 우리나라 교육현실이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께서도 이 부분을 대단히 염려하고 계실텐데,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과 대책은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한국 교육에 대해 가장 아쉬운 점은 역시 입시에 과몰입하는 천편일률적 교육 행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기존 교육의 장점은 능력 있는 인재를 기를 수 있고, 더욱 많은 지식을 축적할 수 있다는 점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우리가 세상을 대하는 자세, 다른 인간과 교류하는 태도, 자연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관점 등 좋은 인간으로 사는 법 등에 대해서는 거의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설령 가르치더라도 책을 통해 문자로 전달할 뿐 사실상의 체험 등은 거의 진행되고 있지 않은데요. 이와 같은 윤리적 덕목들은 각자의 귀중한 체험으로부터 파생되는 것임을 감안할 때 지식 전달 위주의 교육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9. 그동안 수많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셨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례와 학생, 제자 등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뉴질랜드의 루아페후를 등정할 때, 전맹 즉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경희’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태어난 이래 이제껏 한 번도 세상을 본 적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암흑이었던 것이지요. 그럼에도 그 아이가 우리와 함께 이 특별한 루아페후 등정을 함께하기로 결정했을 때, 나는 가슴이 뭉클하면서도 매우 서글펐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모두 최대한 노력하여 경희를 정상까지 성공적으로 이끌었는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파란 하늘 아래의 하얀 구름들을 다같이 보면서 희열과 행복에 가득차 있을 때에도 경희는 여전히 볼 수 없었습니다. 그때 내 마음이 매우 아팠고, 한편으로는 경희가 너무나도 대견했던 것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10. 선생님께서 이제껏 이 많은 귀한 일을 해오셨는데, 선생님의 좌우명이나 인생관에 대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좌우명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나는 우리 젊은이들이나 학생들이 자연을 좀 더 가까이하기를 원합니다. 자연은 그냥 그곳에 서있기만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매일같이 오락이나 유희성 프로그램에 매몰되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방치할 때, 그저 자연은 지루하고 재미 없을 뿐이지만, 그곳으로 직접 들어가 활동하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교감이 싹트고, 행복한 감정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우리에게 자연은 어머니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자연으로 가십시오. 그리고 그곳에서 스스로 자연과의 교감을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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