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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붙들어라 – 전통 붓 제작에 일생을 건 필장 유필무

민병준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3/08/06 [18:39]

생각을 붙들어라 – 전통 붓 제작에 일생을 건 필장 유필무

민병준논설위원 | 입력 : 2023/08/06 [18:39]

 



  강렬한 햇살이 피부를 파고드는 듯한 8월 한낮 먼데이타임스는 충북 증평의 도안에 위치한 석필원을 찾았습니다. 선풍도골, 반갑게 우리 일행을 맞아주시는 필장님은 첫눈에도 범상치 않아 보였습니다.

 

  이분이 바로 수많은 어려움을 견뎌내며, 우리 전통 붓 제작에 50여 년, 오직 한길을 걷고 있는 충북무형문화재 유필무 필장님이셨습니다. 세류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믿고 있는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 장인의 삶은 언제나 신선한 감동을 줍니다. 그 감동을 만나는 설렘으로 대화는 진지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도안의 공방 ‘석필원(石筆苑)’의 ‘石’은 중국의 피카소라 불리는 ‘齊白石(치바이스)’의 이름 끝 자를 취했다 하니, 그 깊은 뜻을 감히 엿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두 분 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독학으로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 계발,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념과 자부심..., 이런 면에서 두 거장은 닮아 있었습니다.

 

  석필원에서는 붓 제작 작업이 한창인지 여러 재료들이 놓여 있었는데, 복잡하고 많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10월에 개최되는 비엔날레 출품작품을 제작 중인데, 주로 초필(草筆)이라고 했습니다. ‘초필이라니? 아니, 풀로도 붓을 만든단 말인가?’

 

  “저에게는 오만 가지가 다 재료가 됩니다. 칡, 볏짚, 갈대, 억새, 질경이, 강아지풀... ”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옛날부터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여러 가지 붓을 혼자의 노력으로 재현해 냈다는 점이었습니다.

 

  필장님의 말씀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동물들의 오만 가지 털로도 다 붓을 만들 수 있답니다. 족제비, 노루, 사람의 머리카락, 말의 갈기 및 꼬리, 소의 귓속 털 등 모든 동물의 털이 붓의 재료가 될 수 있는데요, 이젠 점점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야생동물 보호법’으로 동물들의 털을 구하기가 어렵고, 수입에 의존하는 물품들도 가격이 천정부지요, 판로도 구할 수 없으니 대책이 없답니다.

 

  필장님은 수십 년에 걸친 경험과 문헌 연구, 실험 정신 등이 한데 어울려 지금의 경지에 오르셨지만 앞날이 밝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고 보면, 혹시 실망하고 계시지는 않을까요?

 



  “물론 몇 번씩 그만둘까도 생각했었지요, 특히 한중수교로 저가 중국산이 물량 공세를 펼칠 때가 심했지요.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을 스스로 귀하게 생각하면 남들도 그것을 귀하게 생각하는 법이지요. 특히 제 붓의 가치를 알고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구입하여 사용하시는 후원자분들의 성원에 힘을 얻었구요. 더구나 전통은 대체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한번 명맥이 끊어지면 다시는 되살릴 수 없지요. 그것이 제가 오늘을 사는 이유입니다.”

 

  사슴을 닮은 듯한 필장님의 눈에서는 강인한 결기가 느껴졌습니다.

 

  그렇다면 이 뜻깊은 붓 제작 과정을 배우는 체험 프로그램 진행 현황은 어떨까요? 코로나 19가 확산되기 전까지는 한 해 총 100~200명 정도씩 참여자가 있었으나 현재는 거의 신청자가 없다고 합니다. 학생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고, 관심 있는 학부모 중 20~30분 정도 10월에 예약이 1건 있는 정도라 하는군요.

 

  불안감 속에서 일생을 걸고 이룩한 이 과업을 계승할 제자 양성 문제에 대해 여쭈어 보았습니다. 모든 유‧무형 문화재는 전승 계승자 육성의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 녹록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자본주의의 편리함 속에서 성장한 젊은이들이 미래가 보이지 않는 붓 제작 사업에 뛰어들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강요할 수도 없는 문제지요. 그렇다고 전승 지원금을 대폭 올리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아, 우리 전통 붓 제작은 이대로 명맥이 끊어지나요?’ 막 여쭈려 하는데 다음의 대답!

 

  “이에 대한 대안으로 문화재청에서는 ‘기록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모든 장인들의 작업 과정을 일일이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입니다. 1년에서부터 3년까지의 기간이 소요됩니다. 이렇게 되면 후대에라도 배울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상을 통해 얼마든지 배울 수 있지요.”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으로 필장님께 미래의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에게 하시고 싶으신 말씀을 부탁드렸습니다. 우리 먼데이타임스가 추구하고 있는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배운 것이 없다며 겸손해 하시던 필장님은 거듭되는 요청에 이렇게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 천재성, 즉 남과 다른 특별함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런데 제도권 교육이 이를 획일화시켜 버리지요. 이를 극복하고, 나답게 사는 일은 매일매일 일어나는 생각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붙드는 것입니다. 하루 하나가 어렵다면, 1주일 또는 한 달에 하나씩이라도 붙들어 실천하다 보면 나름대로의 세계를 갖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석필원을 나서며, ‘오만 가지 일어나는 생각’이 쓰러지기 전에 하나라도 ‘붙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도 가을을 붙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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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니 2023/09/20 [10:08] 수정 | 삭제
  • 저도 어렸을 때 붓글씨를 배웠던 기억이 있어 이 기사를 보면서 옛날 생각이 나네요.그런데 풀로도 붓을 만든다니 참 신기하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나라의 전통이 쉽게 만들어 지지는 않겠지만 계승자들이 나와 이어지기를 기대해봅니다.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 청춘 19 2023/09/05 [20:44] 수정 | 삭제
  • 필장님의 자부심 넘치는 삶, 붓 제작에 일생을 거는 삶! 존경스럽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가시는 길 끝까지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