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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속 작은 한국, Fairfax 한글학교 이야기

원진숙(서울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 기사입력 2024/11/03 [12:51]

미국 속 작은 한국, Fairfax 한글학교 이야기

원진숙(서울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 입력 : 2024/11/03 [12:51]



워싱턴 DC 에서 불과 이삼십분 거리에 위치한 Fairfax County는 내가 일년동안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GMU 대학이 있는 곳이다. 난 오랫동안 다문화 학생들을 위한 언어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가져 오면서 언어란 결국 학습자의 정체성 문제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해외 교포 자녀들의 언어 문화적 정체성 연구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었다. 그러다 올 한 해 나는 미국에서 이 지역 한글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내가 꿈꾸던 연구를 시작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미국에는 현재 약 1,000여개의 한글학교가 있다고 한다. 언어를 교육하는 행위 자체가 언제나 구체적인 사회 문화적 맥락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또 미국이란 나라가 워낙 큰 나라이다 보니 지역적 차이에 따라 한글학교의 운영 방식이나 프로그램도 다 다를 것이다. 따라서 내가 field work를 시작한 한글학교에 대한 이야기는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 근처인 북버지니아 지역의 Fairfax County에 대한 사회 문화적 맥락의 이해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현재 내가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면서 연구를 시작한 중앙한국학교는 미국 전역의 한글학교 교사 연합회인 NAKS라는 조직 안에서도 특히 연구와 교육 활동이 왕성하다는 워싱턴 지부인 WAKS 산하 70여개 주말 한글학교 중 가장 우수한 학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다. Fairfax County의 제법 큰 규모의 한인 타운이 형성되어 있는 Centreville에 위치해 있는 이 중앙한국학교는 이 지역 교민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해 왔던 중앙장로교회라는 대형 교회 안에 위치해 있으며 무려 25년동안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으로 성공적인 한글학교운영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주말 한글학교 형태로 운영되는 이 중앙한국학교는 일단 규모면에서 학생 수만 270명, 태권도와 사물놀이 등의 특별활동 반을 포함한 학급수 30개, 교사 수 30명, 보조 교사 30명으로 이루어진 그야말로 매머드급 위용을 자랑한다.

 

Fairfax County는 미국 안에서도 가장 공교육 시스템이 좋은 학구로 알려져 있는 까닭에 미국의 스카이 캐슬(sky castle)이라 불리우는 곳이기도 하다. 어딜 가나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불사하는 한인들이 미국에서도 주거 비용이 비싸기로 유명한 이곳에 그렇게 많이 거주하는 것은 전적으로 이 지역의 좋은 교육 여건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Fairfax County는 수월성 높기로 유명한 TJ 과학 고등학교를 비롯해 많은 공립학교들이 IVY League와 같은 최상위권의 대학 진학률이 압도적으로 높을 뿐만 아니라 새로 이주해 온 학생들에게 초기 학교 적응에 필요한 양질의 ESOL 교육 프로그램은 물론 한국어 immersion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초등학교까지 있으니 자녀 교육에 진심인 한인 학부모들이나 자녀들에게 좀더 좋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국경을 넘어 교육 이민을 감행한 기러기 가족들에게 당연히 매력적인 곳일 수밖에 없다.

 

어디 그뿐인가? 우수한 교사진과 내실있는 교과 외 활동을 운영하는 학교 교육 시스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교 커리큘럼 안에 주요 World language 교과목으로 지정된 한국어는 학생들이 가장 많이 선택해서 배우고 싶어하는 경쟁력 있는 교과목으로 인정받고 있고 심지어 한국인 학부모들의 구미에 맞는 다양한 맞춤형 사교육 시장까지 발달되어 있는 교육 인프라까지 갖추고 있는 것도 이 패어팩스 학구의 차별화된 매력 요인일 것이다. 미국 안의 한국이라 할 만한 제법 규모가 있는 코리아 타운이 Centreville에 형성된 것은 모두 이런 Fairfax County의 사회 문화적 배경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과 달리 가을 학기에 모든 학제가 시작되는 이곳은 한글학교도 9월 개학식 행사를 필두로 본격적으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다. 뜨거운 여름 내내 교사 역량 강화를 위해 몇 차례에 걸쳐 자체적인 교사 워크숍은 물론 워싱턴 버지니아 메릴랜드 지역의 한국학교 교사 단체인 WAKS를 중심으로 한 학술대회 및 온라인 집합 연수 등을 통한 철저하고 정성스런 준비 과정을 거쳐서 드디어 개학식 행사를 치른 것이다.  

 

새로운 학기 첫날 개학식 행사에 이른 아침부터 자녀들의 손을 잡고 몰려들기 시작한 학부모들과 아이들, 행사를 준비하느라 부산하게 움직이는 한글학교 선생님들과 보조 교사들이 실내 운동장을 가득 메운 이 개학식 행사는 그 자체로 특별한 감동이었다. 바쁘고 고단한 이민 생활 속에서도 토요일 그 이른 시간에 자녀들의 손을 꼭 붙잡고 와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 교육을 통해 건강한  Korean-American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해 주려는 학부모들의 정성, 기민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정성스럽게 따뜻한 미소로 맞아들이며 행사를 진행하는 선생님들, 새로 한글학교를 시작하는 기대감에 눈을 반짝이면서 분반된 자기 학급의 자리를 찾아서 앉는 똘망똘망한 아이들의 모습이 한데 어우러져 뿜어내는 열기가 대단했다.

 

또한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이 중앙한국학교의 학생들 중엔 교포 자녀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사회의 백인이나 흑인, 라티노 가정의 자녀들은 물론 성인들까지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최근 BTS를 비롯한 한류 문화의 영향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과 호감도가 증가한데다 패어팩스 카운티의 경우, 초중고 모든 공립학교에서 한국어가 주요 외국어 과목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어를 잘 하면 향후 자녀들의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란다. 이쯤되면 한글학교는 다양한 언어와 문화, 인종이 한데 어우러진 혼종성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제3공간이라 할 만하다.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diasphora로 minority로 살면서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태어나면서부터 영어로 성장하는 자녀들에게 한국어와 한국의 문화를 심어주는 일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초국가적 이주를 실행하고 언어와 문화가 낯선 곳에서 삶을 꾸려 나가면서 자녀들에게 자신의 뿌리가 되는 언어와 문화를 심어주고자 노력하는 학부모와 “이곳에서 오래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어느새 내가 유관순이 되어 있더라고요. 사실 한글학교 선생님들이 모두 유관순이에요.” 라고 이야기하는 한글학교 선생님, 주말의 꿀맛같은 아침잠을 온전히 반납하고 한글학교에 와서 열심히 한국어와 한국의 문화를 배우는 아이들의 열망이 함께 공존하는 한글학교는 ‘미국 속의 한국’이자 차세대 교포 자녀들을 건강한 Korean-American으로 길러내는 교육의 못자리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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