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으니라. (마태복음 22장 14절)”
총 700쪽이 넘는 엄청난 분량에, 인류 역사에 대한 혁신적 통찰은 담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는 명저 《총, 균, 쇠》를 읽다가 만난 이 성경 인용문은 실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다소 피로감을 느낄 때쯤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독자들에게 이 놀라운 비유를 제시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성경 구절은 인류 역사 변화의 비밀을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야생 동물들의 가축화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으로, 그 많은 야생 동물들 중 가축으로 선택된 종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며, 운이 좋아 그곳에 살던 인종들만이 선택을 받아 발전된 문명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치게 된다. 사막을 헤매다가 오아시스를 만난 격이라고나 할까? 생텍쥐페리는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오아시스를 감추고 있어서라고 했다.
저자는 자신과 함께 지적 여행을 하고 있는 독자들이 지칠 때쯤 이렇게 오아시스와 같은 상쾌한 깨달음, 차원 높은 지적 유희를 제공한다. 이 놀라운 경험을 한 독자들은 모두 저자와의 지적 여행을 끝까지 즐기게 된다.
이제 《총, 균, 쇠》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저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뉴기니인인 얄리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다. “왜 흑인들은 백인들처럼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세상은 왜 공평하지 못한지, 유럽과 아프리카의 빈부격차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에 대한이 질문에 답하고자 필자는 실로 25년이란 긴 세월을 연구하고 집필했다. 그 답을 정리한 책이 바로 《총, 균, 쇠》이다.
곧 무기, 병균, 금속을 인류 역사 변화의 세 핵심 요소로 보고, 이를 중심으로 왜 민족 간에 불평등이 발생하고, 서구가 세계를 어떻게 정복했는지에 대한 근본 원인을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은 출간 즉시 언론과 학계를 뒤흔들었다. 인류 역사에 대한 통찰을 담은 세계적 명저로서 현재 43개 언어로 번역되어 수백만 부가 판매된 글로벌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으며,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워싱턴 포스트)’으로 전 세계에서 널리 읽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대학교 도서관 대출 최장기 1위’, ‘국립중앙도서관 대출 상위 10위’, 간행물윤리위원회 선정 ‘대학 신입생을 위한 추천도서 20종’, 교수들이 뽑은 ‘다시 읽고 싶은 책 10위’ 등으로 선정되었다.
발간 다음 해인 1998년에 퓰리처상을 비롯하여, 영국 과학출판상, 일본 코스모스상, 미국 캘리포니아상 등을 수상했다. 특히, 또 하나의 글로벌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총, 균, 쇠》에서 가장 큰 영감을 받았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총, 균, 쇠》는 역사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뒤집고 문명의 생성과 번영을 조망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문화인류학에서부터 역사, 지리학, 과학, 미래 전망까지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위대한 인류 지성의 종합보고서라 할 수 있다. 인류가 마주한 위기와 기회를 새로운 관점에서 통찰한 이 책은 인류 역사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압도적인 서사로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다시 얄리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볼 때, 얄리는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탁월하다. 길이 없는 숲에서 밖으로 나가는 방법, 나무 열매나 식물 중에서 식용 가능한 것을 판단하는 법, 나아가 마을 주민들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법 등, 문명인인 자신보다 항상 현명한 판단을 내린다. 그렇다면 대륙 간 문명의 격차를 거론할 때마다 등장하는 인종 사이의 두뇌 차이, 백인이 유전적으로 탁월하여 유라시아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발달된 문명을 가지게 되었다는 ‘인종 간 두뇌 차별설’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후 여러 연구에서도 인종 간 두뇌 차이는 유전학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대륙 간 문명의 격차를 부인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른 지역과 두뇌 수준이 비슷한 지역에 살고 있던 유라시아인들은 어떻게 다른 지역보다 빨리 문명 발전을 이루고, 다른 지역을 정복할 수 있었을까? 이때 총, 균, 쇠는 어떤 역할을 한 것일까? 저자는 유라시아인들을 지배자로 만든 것은 우월한 유전자가 아니라, 단지 축적된 정보를 소통하기에 유리한 환경 조건을 가진 지역에 태어났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들의 어떤 유전자도 결코 우월하지는 않다고 단언한다.
인류는 정해진 운명에 따라 살아온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스스로 발전해 왔는데, 단지 시작점이 달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대전제를 바탕으로 《총, 균, 쇠》의 위대한 담론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민족 간, 대륙 간에 드러나는 문명 발달의 현저한 차이는 바로 지리적 위치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그 근거를 대략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인류가 먼저 등장한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먼저 발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는 아프리카에서 시작하여, 그 활동 범위를 유라시아를 거쳐 아메리카로 확대해 갔다는 것이 정설이다.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라면 이곳에서 인류가 가장 먼저 정착했을 것이고, 가장 빠르게 발전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느 지역이 발전하려면 많은 구성요소와 이해관계의 성립이 필요한데, 아프리카는 그렇지 못했다. 원시사회의 발전은 수렵채집에서 농업으로의 전환이 필수적인데, 이 지역은 그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둘째, 수렵채집에서 농업으로의 빠른 전환이 결국 강한 부족으로 거듭나게 한다. 농업은 식량을 많이 생산할 수 있어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게 된다. 이 많은 인구는 다른 소규모 부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고, 영토를 넓힐 수 있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야생 식물 중 집약적 생산이 가능한 식물(밀 등)이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농업의 발전은 인구밀도를 높이고, 큰 세력을 형성하는 데 유리한 것은 자명한 사실인데, 이러한 식물이 많았던 곳이 바로 유라시아 지역이었으며, 이 지리적 우연이 이후 역사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가 교과서에서도 배웠던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포함한 대륙이 자연의 혜택을 받게 된 것이다.
셋째, 원시사회에서 농업 생산량을 높이는 데 필수적인 것은 가축을 부리는 일이었다. 언뜻 우리는 아프리카 대륙의 초원의 달리는 야생 동물을 떠올리며, 이 대륙이 동물의 가축화에 유리할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엔 또 절묘하게도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에 부합한다. 즉 동물들과 인간의 결혼에서 행복할 수 있는 짝은 모든 조건을 갖춘 소수의 종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종들은 식성, 사회성 등 여러 항목 중 한 가지만이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그 결혼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 많은 야생 조상종 중 가축화된 포유류는 14종에 불과하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으니라.”는 성경의 비유가 묘하게도 이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그런데 ‘가축화 후보종’도 유라시아 72,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51, 남북아메리카 24, 오스트레일리아 1로 유라시아가 가장 많았다. 그중 가축화된 종은 유라시아 13종, 남아메리카 1종으로 대륙마다 매우 고르지 않게 분포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둘째, 셋째와 같은 상황이 총기, 병원균, 쇠를 갖게 된 중요한 한 요인으로 작용을 하게 된다. 농업을 통해 식량 증산을 도모하게 된 인류는 점점 큰 집단을 이루게 되고, 생활에 필요한 도구(쇠)를 발명해 낸다. 또한 다른 집단과의 경쟁 과정에서 승리하기 위해 무기(총)를 만들어 낸다. 인간들이 집단으로 모여 살고, 가축화된 동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인류는 숱한 병으로 고통을 받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은 병원균(균)에 대한 면역력을 가지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유라시아인들은 생존과 투쟁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게 된다.
넷째, 식량 생산과 생활 방식 등이 전파되는 속도를 만드는 주된 요인은 각 대륙의 축의 방향이다. 유라시아는 주로 동서 방향, 남북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주로 남북 방향이다. 농업과 가축 등이 번성하고 이동하는 데는 동서 방향이 유리하다. 동서, 수평 지형은 기온이나 강수량 등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수직, 남북 지형은 기온, 강수량 등이 큰 차이를 보이며, 지형적으로도 사막이나 산맥, 바다 등으로 분리되어 있다. 따라서 이 대륙들은 고립된 채 더디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이와 같이 수평, 동서 지형인 유라시아가 총, 균, 쇠를 가지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후진 지역을 침략하여 제국시대를 열어가게 되었다. 유명한 예로 스페인 피사로가 월등한 무기로 500배나 되는 잉카인들을 물리쳤지만, 더욱 치명적이었던 것은 병원균이었다. 스페인의 아메리카 침략 이후 천연두 등 각종 질병으로 죽어간 원주민의 수는 콜럼버스 이전 인구의 95%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 엄청난 결과에 의아해하던 독자들도 최근 코로나 팬더믹을 겪으며 당시 상황을 상상할 수 있으리라.
이상에서 ‘유라시아 대륙’이 어떻게 최고의 발전을 이루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같은 유라시아 대륙 내에서 어떻게 ‘유럽’이 더욱 빨리 발전할 수 있었을까? 일찍이 고대 문명을 발전시켰던 중국은 어째서 그 발전 속도가 뒤떨어졌을까? 각 대륙이나 국가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당연히 문명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문명화의 조건으로는 문자 발명, 기술 발달, 국가 체제의 등장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중국은 1,500년 이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문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중국의 초기 발전을 이끈 것은 일찍부터 통일된 국가 체제의 힘이었다. 중국은 유럽에 비해 해안선이 완만하여 외부 세력보다는 내부 세력의 집중과 결속이 가능한 지형이다. 이후 중국은 다소의 분열을 제압하며 만성적 통일 체제를 유지하게 된다. 이에 비해 유럽은 해안선이 톱니바퀴 모양으로 복잡하여 분열 상태가 지속되었으며, 서로 경쟁하고 다투는 과정에서 기술이 발전하고, 한정된 자원에서 식민지를 개척하려는 모험정신이 충만하였다. 결국 지형적 차이에 의한 중국의 만성적 통일과 유럽의 만성적 분열이 두 지역의 문명 발전을 결정하는 중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 거칠게나마 《총, 균, 쇠》의 내용을 살펴보며,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선물하는 지식의 폭포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경이로움 속에서 1만 3천여 년의 인간 역사 전개 과정에 대해 저자와 어려운 지적 여행을 함께했다. 책의 내용이 질과 양적인 면에서 깊고 방대하여, 문자 그대로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이요, 수박 겉핥기식이다. 설명이 부족한 부분은 독자 각자의 정밀한 검토에 넘기는 부끄러움을 범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얄리의 질문에 답할 때가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뉴기니인들이 유럽인들에 비해 결코 인종학적으로 뒤지지 않는다. 인간의 역사는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환경의 차이 때문에 다르게 발전했다. 진보된 기술, 중앙집권적 정치조직 등은 인구밀도가 높은 정주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농업 발생에 중요한 작물화와 가축화가 용이한 야생종은 유라시아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곳에 살던 거주자들은 총기와 병원균과 금속을 발전시킬 주도적 위치를 선점했다. 그들의 발전된 문화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주도하게 된 것이다. 결국 유라시아인들은 그들의 우월한 인종적 특징이 아니라 지리적 환경이 우월한 지역에서 태어난 행운으로 보다 발전된 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아, 초대된 동식물이 많았지만 농사에 적합한 종으로 선택된 것이 드물었는데, 그 어려운 선택이 대륙 및 인종의 역사 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어쩌면 끝까지 지적 여행을 함께한 독자들에게도 성경의 이 대목은 그대로 유효할지도 모른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으니라. (마태복음 22장 14절)” <저작권자 ⓒ 먼데이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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