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사건은 1947부터 1954년까지 7년여에 걸쳐 제주도에서 무장대와 토벌대의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학살당한 사건을 가리킨다. 그 역사의 비극 앞에 한 개인이 마주 서게 되었을 때, 그는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어느 한순간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7년을 넘는 기간 동안 3만의 선량한 민중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자기 가족도 참담한 피해를 입었다면... 아마도 대부분 사람들은 극도로 분노하며, 그 진실을 밝히고, 관련자들을 저주하며, 어떤 방식으로든 가해자들에게 보복하려 들지 않을까?
일반적인 독자라면, 『4‧3이 나에게 건넨 말』을 읽기 전에 글의 내용이 너무 어둡지 않을까 걱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 한상희는 이런 우려를 불식한다. 책의 제목처럼 4‧3이 ‘건넨’ 말을 우리에게 ‘건넨’다. 차분하고 안정된 어조로, 자신이 알게 된 역사적 진실을, 그 깊은 사색과 논리, 용서와 화해, 아픔을 통해 얻어낸 교훈의 일반화하여 이 책 한 권에 펼쳐져 있다.
한 권의 책 속에 이렇게 많은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전문가도 실로 이 책 속에 4‧3의 거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저자의 높은 지적 수준을 접하게 된다. 또한 그가 그동안 기울인 노력과 끈기, 성실성 나아가 사명감이나 숙명까지를 생각하며 숙연해지기도 한다.
저자는 어렸을 때 꿈을 통해 운명적으로 4‧3과 만나게 된다. 바닷가에서 손을 씻다 뼈들을 만지게 되고, 그것들을 공동묘지 어느 무덤에 쌓아놓는 무서운 꿈 사건으로 희생된 외할아버지는 그렇게 저자에게 다가오셨다. 그 이후 저자는 4‧3에 대한 ‘질문’을 구하는 긴 여정을 떠나게 된다. 질문에 대한 사람들의 제각각 달랐다. 어떤 이는 미군정 이야기를, 누군가는 대한민국 정부를, 또 다른 사람들은 군인과 경찰을, 또는 무장대의 잔인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도대체 4‧3을 꿰뚫는 진실은 무엇일까? 저자의 궁금증은 ‘진상조사보고서’를 통해 해결된다. 그리고 저자는 자신이 알게 된 4‧3의 진행 과정과 그 과정에서의 가해자들이 저지른 참혹한 이야기들을 통시적 관점에서 이야기체로 설득력 있게 서술해 간다.
그런데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가해자들에 대해 분노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에 대해 집중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인데, 저자는 다시 다음 질문을 시작하는 것이다. 희생된 사람들의 가족들은 어떻게 아픔을 극복해 냈는지, 초토화된 마을에 홀로 남은 어린아이들은 어떻게 제주공동체를 복원해 냈는지, 그 회복의 힘은 무엇일까? 독자들은 저자의 이 끈기 있고, 깊이 있는 정서에 감탄하게 된다.
여기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문제를 제기한다. 4‧3의 가해자들은 우리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일까? 4‧3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저자는 ‘악의 평범성’ 이론을 소개하며, 우리 인간들은 마음속에 선과 악을 모두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즉 누구든 악한 일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4‧ 3 때 위험을 무릅쓰고 부당한 명령을 거부함으로써 많은 생명을 구한 인물들의 예를 통해 ‘선의 시민성’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곧 우리는 성찰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넘어 ‘선의 시민성’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4‧3은 평화 ‧ 통일 ‧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상징으로 기억되어야 하며, 평화와 인권은 인류 보편의 가치이며, 평화 통일은 우리가 이뤄야 할 소중한 가치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세계시민 의식을 가지고 평화 ‧ 인권의 길로 나가는 데 4‧3은 살아 있는 교재가 될 수 있다고 일깨운다. 그리고 사과와 용서, 화해의 ‘회복적 정의’를 통해 무너진 공동체를 살리는 길을 제시한 데서 4 ‧ 3의 현대적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그녀의 책 『4‧3이 나에게 건넨 말』을 통해서 저자 한상희는 ‘4‧3이 우리에게 건넨 말’을 기억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녀는 이제 역사 속에, 우리들 특히 피해자들의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는 4‧3 사건의 아픔을 극복할 때가 되었다고 외치고 있다. 그래서 제주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긴 세월 동안 말할 수 없는 아픔과 회한 속으로 밀어 넣는 또 다른 ‘4‧3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제는 모든 사람이 ‘세계 시민성’을 회복하고 실천해 갈 것을 요청하고 있다.
저자 한상희 한상희 박사는 제주 태생으로 역사·사회·지리·특수교육을 전공했고, 1996년부터 2022년까지 역사·사회 교사와 제주교육청 전문직으로 근무했으며, 현재는 중학교 교감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녀는 그동안 「청소년을 위한 제주 역사」, 「청소년, 4·3 평화의 길을 가다」, 「새로운 교육과정에 담은 세계시민교육」 등을 공동으로 연구·집필하였다. 그녀의 책 『4‧3이 나에게 건넨 말』은 우당도서관의 ‘2024년도 책 읽는 제주시 올해의 책’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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