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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존경하지만 한글은 경시하는 사회

신인호 | 기사입력 2024/05/27 [10:17]

세종대왕은 존경하지만 한글은 경시하는 사회

신인호 | 입력 : 2024/05/27 [10:17]

올해 제627돌을 맞는 '세종대왕 나신날' 기념 행사가 세종시 등 전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성대하게 열렸다. 한글을 창제하고 우리 문화를 발전시킨 세종대왕의 정신과 업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러한 온 국민의 세종대왕 사랑과는 별개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한글 경시 풍조는 국제화라는 미명하에 나날이 확산되고 있다.

 

대도시 이곳저곳이 외국의 유명 거리인지 착각이 들 정도다. 일부 거리의 간판들은 온통 외국어 표기다. 이미 너무 익숙해져 마치 한자가 우리말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았던 것처럼 친숙해졌다. 국민의 방송이라고 외치는 공중파 방송도 마찬가지다. 종합편성채널은 말할 것도 없다. 일부 광고들은 우리말이 한마디도 없다. 자세히 보고, 또 보아도 다른 나라의 광고는 아니다. 광고뿐이 아니다. 방송국의 프로그램도 진행자나 등장하는 패널들이 사용하는 말들 속에 외국어가 넘쳐난다. 타 방송사를 지칭했다며, M방송국, K방송국으로 발 빠르게 정정하고, 혹시 상품명이 등장이라도 하면 너스레를 떨며 *타벅스, *도라면, *성휴대폰 등 정정하느라 분주하지만, 정작 국민 대다수가 알까 싶은 외국어는 경쟁하듯 사용한다.

 

수도이전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안고 만들어가고 있는 세종시도 마찬가지다. 광고물 등의 한글 표시 관련 내용을 규정한 ‘세종시 한글사랑 지원 조례’가 2014년 제정, 2021년에 개정을 거쳐 ‘한글간판거리’ 조성을 위해 옥외광고물 개선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노력이 무색하다. 시청사 주변은 말할 것도 없이 세종시 전역에 외국어 간판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거리의 간판뿐만이 아니다. 일부 주차장의 안내 표지판도 영어로만 되어 혼동을 준다. 민간업자가 건설한 건축물이라는 이유로 외국어 사용이 방치되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정부에서 만들어지는 많은 생산물도 예외가 아니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서 생산하는 각종 공문서에서도 우리말보다 외국어 사용이 빈번하다. 일부 젊은 주무관이 작성한 창의적인 한글 전용 문건들은 세간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반려되고 외국어로 수정하도록 강요하는 분위기가 요즘 공직사회에 팽배하다.

 

물론 한국어 사용에 대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선언적 조례 제정이나 간헐성 홍보용 정책으로 끝나고 있다. 전국적으로 경쟁하듯 도입되는 우리말 혹은 국어 사용 조례들이 무용지물이다. 서울 인사동에 조성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한글간판거리도 씨가 말라버렸다. 인사동 주민들조차 대부분 한글간판거리를 모른다. 간혹 아는 사람들도 “옛날에 있었다” 정도다. 알려주는 거리마저 지금은 외국어 간판이 넘쳐난다.

 

안타깝게도 K-문화에 반하여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접하는 국내의 미미한 수준의 한국어 사용은 그들로서는 놀랍고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한국을 방문한 것인지, 해외 유명지를 방문한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다는 반응들이다.

 

이러한 가운데 세계 이곳저곳 한글에 대한 반가운 소식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조금은 홀대받고 있는 한글이 세계 도처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K-컬처의 보급과 IT 기술의 결합으로 한글의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K-문화의 본고장을 방문하려는 외국인들의 수요가 코로나 이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한글문화수도 세종시가 한글 사용의 허브 도시임을 보여주는 모범적 정책 도입과 시행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이름을 차용한 것에 대한 예의이며, 세종시에 걸맞은 정책이다. 우리말을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이나 이러한 활동을 하는 기관을 지원하는 일도 이어질 필요가 있다. 기존 도시가 못하니 한글문화수도이자 미래의 수도이고자 하는 세종시가 해주길 바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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