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의 황제, 흙신 나달 아름다운 은퇴 (youtube.com)
초여름의 태양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세계 테니스인들의 시선은 프랑스 파리로 향한다. 롤랑가로스라고도 불리는 프랑스 오픈 테니스의 계절이다. 이른바 테니스 마니아들의 ‘잠 못이루는 밤’이 지속되는 기간이다.
1891년 시작된 이 대회는 133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데, 4개 메이저 대회 중 유일하게 클레이코트에서 경기가 진행된다. 또한 이 대회를 롤랑가로스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1차 세계대전 중 조종사로 활약했던 전쟁 영웅 ‘롤랑가로스’를 기리기 위해, 경기장의 명칭을 그의 이름으로 명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경기장은 붉은 벽돌 가루를 사용한 앙투카 클레이코트로 되어 있다.
이 앙투카 클레이코트의 붉은 빛은 정열의 상징이다. 이 정열의 땅, 롤랑가로스에서 역사적인 경기가 펼쳐졌다. 본선 1라운드 경기임에도 50,000명의 관중이 운집했으며, 세계 랭킹 1위의 조코비치, 차세대 선두 주자 알카라스, 여자 세계 랭킹 1위 시비옹테크도 함께하여, 이 경기의 중요성을 웅변하고 있었다.
이 경기는 클레이코트의 제왕, ‘흙신’이라 불리는 나달과 세계 랭킹 4위의 알렉산더 즈베레프의 대결로 전개되었다. 38세의 나이에 허리와 고관절 부상 등으로 고생했던 나달은 올해가 롤랑가로스에 출전하는 마지막 해가 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었다. 그런데 첫 경기에서 나달보다 11살이나 어리며, 신장이 198cm인 강호 즈베레프를 만남으로써, 이 경기가 나달의 은퇴 경기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경기가 시작되자 관중들은 나달과 동일시되었다. 그와 함께 달리고 다양한 샷을 구사하며 함께 포효하고 안타까워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즈베레프의 3 대 0 승리였다. 패자인 나달은 최선을 다했고 승자인 즈베레프는 예의를 갖추었다. 관중들도 모두 기립 박수를 보내며 떠나는 나달을 위로했다. 살아있는 전설의 화려한 퇴장이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나달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붉은 빛 정열, 롤랑가로스에서 탄생한 영웅 중의 영웅이 바로 라파엘 나달이다. 그는 정말 롤랑가로스에 잘 어울리는 선수이다.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하는 그의 경기 스타일은 클레이코트에 특화되어 있다. 발로 치는 테니스라 불리며 베이스라인에서도 공격적인 플레이가 가능한 놀라운 선수다. 스트로크를 구사할 때 공의 회전력을 극대화하여, 마찰력이 큰 클레이 코트에서 위력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상대를 제압한다. 특히 코트 외각에서 구사한 공이 네트 옆을 지나 안으로 휘어들어 가는 특유의 샷은 나달만이 가능한 기술이다.
이를 바탕으로 나달은 롤랑가로스에서 112승 4패, 96.6% 승률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작성했다. 그는 이 그랜드 슬램에서 총 22회의 우승을 차지했는데 롤랑가로스에서만 14회의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는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넘기 힘든 기록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사실은 이 대회에서 두 번째로 우승을 많이 차지한 비에른 보리가 6회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이 기록이 더욱 높이 평가되는 것은 이 결과가 테니스의 황제 페더러와 무결점의 사나이로 평가되는 조코비치 등과의 경쟁에서 이룬 것이라는 점이다.
한편 나달은 독특한 루틴으로도 인기가 있다. 서브 연속 동작 시 공을 튀기며, 머리, 양쪽 어깨, 코, 양쪽 귀, 바지 앞뒤를 만지는 루틴이 대표적이지만, 음료수를 나란히 정렬해 놓는다든지, 코트를 이동할 때 라인을 밟지 않는 등 기이해 보이는 행동으로 웃음을 선사한다.
나달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아무래도 그의 인품인 것 같다. 그는 한번도 라켓을 던지거나 부수지 않았다. 나달은 2004년 부상을 당했을 때 기아와 스폰서 계약을 맺는다. 그런데 그는 놀랍게도 최고의 선수로 성장한 지금까지 기아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실력과 인품을 겸비한 흙신 나달은 날개를 접고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물론 그의 말대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며”, 파리 올림픽에 출전하여 롤랑가로스에서 복식경기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후 각종 경기에서는 그를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다.
흙신을 떠나보내는 일은 테니스인 애호가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슬픔이다. 그러나 나달은 롤랑가로스에서 불멸의 대기록을 남겼다. 뜨겁게 타오르던 여름 햇살이 서산에 지고,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 때면 우리는 앙투카 클레이코트를 야생마처럼 누비던 그를 영원히 그리워할 것이다. <저작권자 ⓒ 먼데이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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