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형 선생 후손들과 로자 가족 (사진: 최재형 후손 로 자 제공)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부인 최 엘레나 여사가 마지막까지 살았던 곳이 키르기스스탄이었고 로자가 사는 카라콜에도 잠시 산 적이 있다. 로자는 키르기스스탄에 사는 최재형의 유일한 후손인데, 선생의 여섯째 딸 류드밀라의 외손녀이다.
나는 로자가 최재형의 여섯째 딸 류드밀라의 외손녀, 최재형의 외증손녀였기에 최 엘레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만나보니 로자는 아주 특별한 후손이었다.
로자를 낳은 아지나는 최재형의 여섯째 딸 류드밀라의 외동딸이었다. 아지나가 낳은 딸이 바로 로자였는데 아지나는 로자를 낳자마자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로자는 외할머니인 류드밀라에게 양육권이 넘어가 외할머니가 로자를 키웠다. 류드밀라는 로자를 친딸처럼 키웠고, 로자는 사춘기 무렵까지 외할머니인 류드밀라가 친엄마인 줄 알았다고 한다. 2003년, 로자가 스물다섯 살 때 류드밀라는 93세로 돌아가셨다.
로자는 류드밀라의 유품들을 거의 다 간직하고 있었다. 로자에게 모든 자료와 이야기들을 전해 들으면서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 17만여 명 전체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6,000 Km 밖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된 후 뿔뿔이 흩어져 뿌리를 내린 곳들이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스탄이라 불리는 나라들이었다.
1937년 이전에 이미 러시아 대도시에 유학을 가거나 소비에트 연방의 농업정책으로 러시아나 중앙아시아로 이주된 사람들이 있었다.
실제로 카자흐스탄에서는 벼농사를 최초로 성공한 사람이 고려인인데 연해주에서 벼농사를 성공시킨 고려인들을 먼저 카자흐스탄에 이주시켜서 성과를 낸 것이다.
최재형 선생이 1920년 우수리스크에서 일본군에 총살된 후 남은 가족들은 거의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 동양의 카네기라고 불릴 만큼 부를 축적했던 최재형은 독립운동과 동포들의 지원에 엄청난 재산을 모두 바치고 순국하셨다. 따라서 가족들의 삶이 무척 궁핍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이미 2012년에 내가 펴낸 『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을 쓸 때 파악했던 내용이었다.
내가 알고 싶어했던 것이 최 엘레나가 최재형 순국 후 어떻게 살아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었는데 그야말로 두드리면 열린다는 진리처럼 로자와의 만남이 나를 흥분시켰다.
최 엘레나 여사는 1932년 봄, 최재형의 셋째 아들(최 엘레나가 낳은 첫째 아들) 발렌틴과 함께 영원히 우수리스크를 떠났다. 최 여사는 노보시비리스크에 가서 최재형의 넷째 딸(최 엘레나가 낳은 첫째 딸) 류보프와 함께 머물다가 아들 발렌틴은 혼자 모스크바로 떠난다. 최재형의 넷째 딸(최 엘레나가 낳은 둘째 딸) 소피아는 당시 키르기스스탄 보건문화부 장관 쇼루코프 코자한과 결혼하여 아들 알레고를 낳은 후였다. 최 엘레나 여사는 먼저 모스크바에 온 발렌틴과 소피아, 소피아의 아들 알레고와 함께 모스크바에 머물다가 소피아와 알레고를 데리고 소피아의 남편이 있는 즉 사위가 있는 키르기스스탄 프룬제(현재 비쉬켁)로 이동한다.
그후 소피아의 한 살 짜리 아들이 병에 걸려 세 사람은 다시 모스크바로 이동한다. 엄혹한 스탈린 치하에서 한 곳에 오래 머물 수 없던 최재형의 가족들은 모스크바에서 1937년 초까지 살게 된다. 그러나 1937년 이전에 연해주를 떠난 고려인들도 1937년 9월 9일부터 시작된 스탈린의 탄압을 피해 갈 수가 없었다.
최 엘레나와 남은 자녀들은 이리저리 피해 다녀야 했고, 최재형의 둘째 아들 파벨과 셋째 딸 류보프는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보건문화부장관인 사위 코자한도 숙정되었다. 남은 자녀들은 감옥에 갇혀 지내다가 1947년 소피아와 알레고는 키르기스스탄 비쉬켁으로 이사했고, 최 엘레나는 1949년 알마아타에서 비쉬켁으로 왔다. 최 엘레나는 키르기스스탄에서도 로자의 외할머니 류드밀라가 사는 카라콜에서도 살았고 1952년 사망할 때까지 비쉬켁에서 살았다. 최 엘레나는 비쉬켁 북부공동묘지에 안장되었고, 사후 70년 만인 2023년 8월 14일 대한민국 국립 서울현충원에 남편과 함께 합장되었다.
나는 2023년, 최 엘레나 유골발굴에서 현충원 합장까지 직접 발로 뛰면서 독립운동가의 아내로 이념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중앙아시아를 전전하다가 유골로 대한민국의 품에 안긴 최 엘레나의 스토리로 고려인들의 강제 이주와 맞물려 책을 쓰고 싶었다. 2012년에 펴낸 『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 은 고려인들의 강제 이주 첫 기착지인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서 살아낸 처절한 이야기다. 이제 앞으로 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의 일생을 통해서 남편을 독립운동으로 잃고 자녀들까지 스탈린에 의해 숙청되는 고통을 안고 유랑의 삶을 살아야 했던 최 엘레나의 삶을 쓰려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 로자의 신세를 졌는데 그 보답의 일부라 해도 좋을 일이 생겼다. 바로 로자의 아들 다니엘을 제5회 최재형 상을 수상한 ‘면사랑’에 취직을 시켜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재외동포청 사업으로 고려인 청년/청소년에게 ‘한국 알기’ 교육을 하는데 다니엘이 선발될 수 있도록 안내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선발이 되어 마침내 다니엘은 나와의 인연으로 한국으로 들어왔다. 어쩌면 최재형 선생이 돌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로자의 집에 가지 않았다면 다니엘은 나를 만난지 두 달 만에 한국으로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앞이 창창한 청년 다니엘이 최재형 할아버지의 은덕으로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비전을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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