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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신(神)이다

김홍열 편집부장 | 기사입력 2024/09/23 [03:26]

의사는 신(神)이다

김홍열 편집부장 | 입력 : 2024/09/23 [03:26]



2024년 추석 명절은 보름달이 뜨지 않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달은 떴다. 그것도 ‘슈퍼문’이 떴다. 그러나 나는 둥근 달을 쳐다볼 여유가 없었다. 혹시 가족 중에 갑자기 병이라도 나서 응급실을 가야 할 일이 생길까 하는 두려운 마음에 온 신경이 그곳에만 쏠렸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2024년 2월 1일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여덟 번째,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의료 개혁’에서 ‘의료 개혁 4대 과제’에 관한 발표를 하고 추진하면서 의료계와의 논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발표된 4대 과제 중에서 핵심 내용만을 살펴보면 (1) 2025년부터 5년간 의대 정원 2천 명씩 증원 (2) 지역의료 강화 방안 (3) 의료사고 안전망 마련 방안 (4) 공공정책 수가 도입‧확산 및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 방안 등이었다.

 

이 중에서 가장 핵심 논쟁은 2025년부터 5년간 2,000명 의대 증원 문제였다.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집단파업으로 병원을 줄줄이 떠났고, 현재까지도 의협과 정부는 서로 팽팽한 기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며칠 전 국민의 힘 한동훈 대표가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을 제안하고, ‘모든 문을 열어놓고 의사와 논의하겠다’고 했으나, 여러 의사 단체 중에서 어느 한 의사협회에서는 ‘대통령의 사과가 먼저 있어야 된다’며 아직도 협의에 응하지 않고 있다.

 

10,000명이나 되는 전공의들이 환자의 곁을 떠난 작금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국민의 생명을 걱정하는 많은 뜻있는 의사들이 응급실을 지켜왔다. 그러나 계속되는 야근과 고된 업무에 지쳐 더 이상 응급실을 지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치료가 가능한 의사가 있는 응급실을 찾기 위해 소위 ‘응급실 뺑뺑이’가 계속되고 있다. 정부와 의사들의 싸움이 절정을 치닫고 있는 가운데 중간에 끼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국민만 좌불안석 불안한 추석을 보내게 되었다.

 

나는 환자이다. 아내도 환자이고 어머니도 환자이다. 내 동생도 환자이고 내 친구들도 대부분 환자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환자 아닌 사람이 없다. 앞으로도 계속 환자로 살아갈 날이 지금까지 살아온 날만큼이나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더 불안하고, 불안정한 의료현장을 보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괜히 억울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환자 입장에서 보면 의사의 수를 늘려 환자를 좀 더 편안하게 살 수 있게 의료계를 개혁한다는데, 왜 의사들은 개혁을 반대하는지 잘 모르겠다. 정말로 의사 수가 늘어나면 진료수가가 올라가 환자들의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의사들의 말이 사실인 걸까? 그러나 의료개혁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정부가 충분히 의료수가를 보전해 주겠다고 하고, 과중한 업무로 고생하는 만큼 수당도 올려주겠다고 하지 않는가?

 

어느 지방에서 의사를 모집하는데 한 명의 의사도 지원하지 않았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의사들은 서울만 있고 싶어 한다. 왜 지방에서의 개원은 고려해 보지도 않고 서울에만 있겠다는 자신들을 되돌아본 적은 있는지 묻고 싶다. 정부는 의사 수가 지금 보다 더 많으면 서울에만 있지 않고 지방으로 가서 병원을 개업할 것이니 열악한 지역의료 발전도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만 잘못하고 있다고 진짜로 생각하고 있는 건지 의료현장을 떠난 전문의와 의대생들에게 묻고 싶다.

 

내가 어렸을 때는 동네에 병원이 한두 곳밖에 없었다. 배가 아파도 귀가 아파도 다리가 삐어도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어 사경을 헤맸어도 한 병원에만 갔다. 아무리 밤늦게 병원문을 두드려도 의사 선생님은 나를 치료해 주셨다. 그때 나에게 그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신(神)과 같은 존재였다. 아픈 나를 언제나 살려주셨다. 어린 마음에도 신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나를 살릴 수 있었겠는가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 따라 교회에 갔는데 연로하신 그때 그 의사 선생님이 같은 교회를 다니고 계신 것을 알게 되었다. 예배를 드리는데 목사님 설교 말씀 중에 “우리를 살리신 하느님 아버지...”하며 기도하실 때 나는 맨 앞줄에 앉아 예배를 보시던 그 의사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나에게 ‘하느님’은 바로 그 ‘의사 선생님’이셨기 때문이었다. 나도 커서 의사가 되어 생명을 살리는 사람의 신이 되고 싶었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신을 죽었다’고 선언했다. 그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신’은 죽었으니 이제 우리가 ‘초인(超人)’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우리는 지금 의사를 잃었으니 ‘초인’ 되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절대 병에 걸리지 않는 ‘초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올 추석에는 다행히 큰 혼란 없이 지나갔다. 아직도 어렵고 힘든 의료현장을 지켜주는 의사, 간호사분들 덕분이다. 환자 곁을 끝까지 지키는 그들이야말로 진정 ‘한국의 슈바이처’이고 ‘나이팅게일’이다. 그들이 바로 우리의 신(神)이다. ‘신’의 은총으로 우리는 아직 살아있으며 좀 더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AI 로봇이 사람 의사를 대신 할 수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로봇 의사에게 몸을 맡기느니 사람 의사에게 나의 목숨을 맡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계가 아닌 뜨거운 심장과 따뜻한 손을 가진 나의 신(神)이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는 “세상에서 선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지켜온 것은 언제나 선한 의지를 가진 용기 있고 희생정신이 가득한 소수의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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