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번 찾아갔을 때, '구두병원'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광수야!'를 힘차게 부르며 병원으로 들어갔다.
마침 병원에서는 환자인 헌 구두가 쇠망치로 얻어맞는 대수술을 받는 중이었다. 수술 중인데도 병원장은 날 반갑게 맞아주었다. 손을 덥석 잡았다. 찢어지고 부르트고 굳은살이 박일 대로 박인 광수의 손! 안 본 사이에 광수 얼굴이 전보다 훨씬 수척해 보였다. 슬쩍 자신의 아픈 데를 귀뜸해 준다.
병원 한구석엔 광수를 위해 20여 년 전에 써준 시가 여전히 걸려 있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저 시를 쓰고, 코팅해서 구두병원에 걸어주었던 것이었다. 그 옆에 내 자전적 수필집 '안고 업고 웃고'도 있었다. 구두를 고치러 온 사람들이 가끔 펼쳐 본다는 나의 책!
20년 넘게 소중하게 보관해준 광수가 한없이 고마웠다. 구두약이 여기저기 묻은 책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사거리 한복판 작은 의자 어릴 적부터 구두를 닦아온 초등학교 동창생 광수가 구두를 고친다
세상 먼지 털어내고 닳아 빠진 밑창은 기어코 뜯어 치운다
바늘에 찔리고 칼에 찢겨도 피멍 든 손바닥으로
고르지 않은 이 땅 높은 곳은 끊어버리고 터진 데는 메워가며
기우뚱거리는 거리에서 제대로 살아보라고 바르게 걸어가라고 바닥을 내려친다
타악 탁 못질을 해댄다
- 졸시 [구두병원] 전문 『뒤로 걷기』 예술의 숲
이 시는 내가 진천고에서 국어 교사로 재임하던 어느 날, 퇴근길에 길 건너편에서 구두를 닦는 친구의 모습을 보다가 떠오른 영감을 정리하여 쓴 시이다.
광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과 동생들 뒷바라지하느라 중학교로 진학하지 못했지만, 바르고 곧게 살았다. 착한 아내를 만나 두 딸을 곱게 키워 시집도 보냈다. 광수는 삼수초등학교 24회 동창회 회장도 하면서, 친구들의 애경사를 일일이 챙기며 살았다. 군민 대상도 받았고 도민 대상도 받았다. 텔레비전방송에도 소개되기도 했다. 최근엔 그의 이야기가 다시 유트브를 달구고 있다. 왜 지극히 평범한 사람, 구두수선소 사장인 그가 이렇게 유명 인사가 된 것일까?
광수를 아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안다. 성실하기 때문이다. 인정이 있기 때문이다. 거짓을 모르기 때문이다. 포장마차를 하며 구두병원 옆을 지키는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런 광수가 오늘 밤도 청소년 선도를 위해 구두병원 일이 끝나는 대로 길거리로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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