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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고려한글,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

이종대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4/08/01 [09:47]

[서평] 고려한글,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

이종대논설위원 | 입력 : 2024/08/01 [09:47]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고려한글’이라니!’, ‘고려시대에도 한글이 쓰였다는 말인가?’ 하고 독자는 의아할 것이다. 더구나 부제목으로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라는 의문문이 붙어있어서 독자의 궁금점은 더할 것이다. 그리고 작은 글씨로 ‘요나라 태종이 편찬한 <고려문 사전> 완전해독’이란 표제글도 보인다. 그제야 독자는 이 책의 성격을 조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책은 ‘사전을 해독한 책인데, 요 나라 태종이 편찬한 것으로, 내용은 요 나라와 이웃하고 살았던 고려시대의 우리글에 관한 것이겠구나’ 하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궁금증이 모두 풀린 것은 아닐 것이다.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라는 의문문을 보면 궁금증은 더하리라. 일반적으로는 한글은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하여 1443년에 창제하였고 실험준비 기간을 거쳐 1446년 반포한 뒤부터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의문문을 보면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종 이전에도 한글이 쓰이고 있었나?’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조석현, 박찬, 채희석 3인 공저인 이 책에서 저자들은 세종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시기 이전인 고려시대에도 우리 선조들은 우리말을 문자로 표기할 때 한문과 한글을 혼용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즉 고려시대에 우리말을 기록한 훈민정음과 비슷한 형태의 글인 고려문이 있었고, 고려문은 상형문자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작가는 학계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가림토 문자의 존재를 인정한다. 즉 고려문은 가림토를 이어받아 씌어진 글임을 밝힌다. 그리고 세종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으로 알려진 1443년보다 500년 이전인 942년부터 947년 사이 약 5년에 걸쳐 112권 4천여자의 고려문 사전(고려 한자, 고려한글 사전)이 요 나라 임금 태종에 의해 편찬되었음을 밝힌다. 여기서 독자는 ‘요나라 태종은 왜 고려문 사전을 편찬한 것인가?’하는 궁금증이 일 것이다. 이에 대하여 저자는 ‘거란은 요 나라를 세우자 마자 당시 문화 대국이었고 강국이었던 고려의 문자와 고려어를 배우고자 했다. 이에 따라 황제의 칙령으로 고려문 사전까지 편찬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즉 경제, 외교, 문화적 측면에서 당시 고려어를 익히기에 기본이 되는 사전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고려시대에는 당시 우리말을 표기하는 방법으로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과 고려문으로 표기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한글과 형태상 비슷한 모양으로 표기된 고려어에 대한 사전이 고려문 사전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채희석 님은 고려문 사전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하여 이 사전이 기름과 물이 서로 섞이지 않는 석판인쇄술에 의한 책임을 밝히고 있다.

 

고려 초기에 기록 반포된 이 고려문 사전에는 가림토에 나오지 않은 자모를 발전시켜 쓴 글자도 보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 ‘고려한글’에서 다루고 있는 글자는 모두 369자이다. 고려문 사전의 4천여 자를 전부 해독하는 것은 지면상 어려워 1권과 발문이 있는 112권과 기타 무작위로 뽑은 낱말을 포함하여 글자를 공동저자 중 고대 한글 연구가 조석현 님이 정리하였다. 저자는 여기서 가림토 문자와 고려문 그리고 훈민정음과 한글을 비교하여 표로 정리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고려한글이 민간에서 남아 있는가? 이에 대하여 작가는 고려한글이 익산 미륵산 암각화와, 원나라의 ‘흑지각화유백쌍압고려한글매병’이라는 도자기에서도 남아있음을 밝혔다.

 

이 책의 ‘발간 후기’를 통해 저자는 고려한글은 일반인들에게는 한문보다도 더 어려운 글자였다고 말한다. 이른바 철학, 문화, 역사를 통달한 대학자들만이 이 글자를 온전히 쓰고 읽을 줄 알 만큼 어려운 글자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작가는 훈민정음은 세종 때 창제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세종 때는 그동안 우리가 써오던 고대한글을 단순화, 체계화, 과학화, 규격화하여 널리 쉽게 익히도록 한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세종대왕의 위대함이 더욱 빛난다고도 말한다. 

 

이 책은 훈민정음 창제 이전에도 형태상 한글과 비슷한 고려문이 있었다는 점에서 그 주장이 새롭다. 그러나 저자가 주장하는 대로 상형문자인 고려문이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표음문자인 한글로 변환되었느냐에 대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이 요구된다는 연구과제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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