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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알카라스, 윔블던 역사를 새로 쓰다

민병준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4/09/05 [11:50]

카를로스 알카라스, 윔블던 역사를 새로 쓰다

민병준 (논설위원) | 입력 : 2024/09/05 [11:50]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듯, 우리의 역사는 늘 후대에 의해 새롭게 쓰여지기 마련이며, ‘일대신인환구인(一代新人換舊人)’, 새 인물이 옛사람을 대신하여 그 몫을 다하게 된다. 마치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처럼 뒤를 돌아보며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고, 동시에 앞을 보며 새롭게 다가오는 미래를 향해 미소를 짓게 된다.

 

지난 7월 14일 펼쳐진 알카라스와 조코비치의 결승전은 신구 황제의 대결로 전 세계 테니스 마니아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뉴 제네레이션’을 이끌고 있는 알카라스는 4강 전에서 ‘넥스트 제네레이션’의 대표 주자인 메드베데프를 제압하고 결승에 올랐다. 이른바 ‘빅3’로 불리며 20여 년간 페더러, 나달과 함께 테니스계를 평정해 온 조코비치도 뉴 제네레이션, 루네와 무세티에게 여유 있는 승리를 거두고, 새로운 세대의 거친 도전에 맞설 준비를 했다.

 

당시 두 선수 간의 상대 전적은 3승 2패로 조코비치가 근소하게 앞서고 있었는데, 이 경기를 조코비치가 이길 경우, 남녀 통틀어 최초로 그랜드 슬램 우승 25회라는 금자탑을 세우게 되며, 페더러에 이어 윔블던 8번 우승자의 반열에 오른다. 한편 알카라스의 경우 이 경기의 승리는 그랜드 슬램 우승이 총 4회가 되며, 더구나 ‘클레이-잔디’에서 연거푸 승리하는 ‘더블’을 달성하게 되니, 서로 간에 그 의미가 매우 큰 경기다. 우승 상금은 약 48억 원.

 

잔디의 너른 정원 윔블던! 윔블던의 잔디는 1년 내내 공들여 키운 뒤 테니스 경기 기간인 14일 동안만 역할을 다한다. 그 후 잔디는 모두 뽑고, 다시 심고, 공을 기울여 균일하게 재배한다. 그리고 테니스 경기를 기다린다. 윔블던의 대표적 상징인 잔디의 푸른 빛과 선수들의 흰 경기복의 묘한 어울림은 윔블던이 주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그런데 윔블던 센터 코트는 엔드라인 부분이 누렇게 드러나 있어, 그동안 경기가 얼마나 치열하게 전개되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4대 메이저 대회 중 가장 먼저 개최된 윔블던은 1877년 시작되어 올해로 147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결승전 티켓은 중앙 방면은 2,500만 원, 주변 방면도 1,000만 원 정도인데, 구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유명하다. 로열박스엔 할리우드 스타 톰 크루즈와 전 테니스 선수 안드레 애거시, 로드 레이버 경, 크로아티아 축구 스타 모드리치 등이 함께 자리했다. 암 투병 중인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자빈이 윔블던의 또 하나의 상징인 보랏빛 의상으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조코비치는 “모든 것을 다 보여주겠다.”라고 했으며, 알카라스는 2024 유로 결승에 오른 축구팀과 함께 동반 우승을 획득하는 스페인의 “완벽한 일요일”을 약속하며 결전의 의지를 다졌다.

 

경기가 시작되자 조코비치는 서브 앤 발리 전형으로 상대를 빨리 제압하려 했다. 오른쪽 무릎을 수술한 상황이므로 어느 정도 예견된 전략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탁월한 서브 플레이스먼트를 바탕으로 상대를 좌우로 흔들다가 빈 공간을 활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코비치의 발리 능력도 뛰어나므로 이 또한 한 판의 잘 짜여진 경기 내용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알카라스도 계획이 있었다. 상대의 날카로운 발리 샷에 수비를 하기보다는 좌우 또는 정면으로 패싱 샷을 구사하며 맞섰다. 특히, 테니스 마니아들의 전문 용어로 ‘담근다’는 샷, 즉 대시하는 상대의 발밑에 공을 떨어뜨리고, 떠오르는 공을 위닝 샷으로 정리하는 영리함을 보였다. 더구나 완전히 옆으로 빠졌다고 판단되는 공을, 헤드 탑 스핀을 구사하여 상대가 예측하기 어려운 구석구석 라인 근처에 떨어뜨리는 기술은 나달을 연상하게 했다. 또한 여유 있는 공을 플랫으로 강하게 날려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는 모습은 페더러를 다시 보는 듯했다. 조코비치가 말한 그대로, 알카라스와 경기를 하면, 나달과 페더러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 같은 압박감이 들 것이다.

 

결국 알카라스가 2시간 27분 만에 3-0(6-2 6-2 7-6〈7-4〉) 완승을 거뒀다. 작년 4시간 42분의 접전과는 대조적인 압도적인 승리였다. 알카라스의 순간적 스프린트 능력과 예측력, 유연성 등 경이로운 신체 능력의 결과였다.

 

무결점의 선수로 불리며, 그랜드 슬램 우승 24회, 준우승 12회를 차지하여 테니스계의 G.O. A.T.(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되는 조코비치도 흐르는 세월이 야속함을 느꼈을 듯하다. 이들의 나이 차는 16세.

 

이제 알카라스는 21세의 나이에 테니스계를 평정하고, 차세대 선두주자로서 윔블던의 역사를 새로 써나가게 되었다. 새 인물 알카라스가 난공불락의 조코비치의 아성을 허물고, 새로운 챔피언으로 우뚝 섰다. 앞으로 그가 어떤 경기력을 보이며 테니스계를 이끌어갈지 팬들은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일대신인(一代新人)을 주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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