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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의 향연

이종대(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3/09/20 [04:02]

솟대의 향연

이종대(논설위원) | 입력 : 2023/09/20 [04:02]


명인은 작업장에서 땅만 바라보았다. 하늘이 땅에 내린 선물도 바라보았다. 나뭇등걸, 참나무 썩은 뿌리, 이리저리 굽은 소나무, 꼿꼿한 쪽 동백, 단단한 오동나무도, 부드러운 살결의 느티나무도 있었다. 그 나무들이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어떤 나무는 친구 나무와 사랑을 나누며 접착제를 붙여 놓은 듯 떨어질 줄 몰랐다. 둘이 하나가 되고 셋이 하나가 될 때도 있었다.

 

작업장에선 먼지가 쌓여 진흙을 뒤집어쓴 듯했다. 작업복을 입고 학의 승천을 위해 사포질을 했다. 셀 수 없이 손을 움직였고, 몸도 따라서 움직였다. 땀이 흐르는 줄도 몰랐다. 때로는 끌로 깎아 낼 때도 있었고, 칼로 도려내기도 하면서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어느새 명인은 수도자처럼 하늘이 주신 거룩함을 몸속에 쌓아가고 있었다.

 

흙먼지로 뒤범벅이 된 나무는 십 년 세월을 기다려, 명인의 손끝에서 살아있는 생명으로 태어나고 있었다. 해산의 고통을 참아내는 임산부처럼, 명인은 오로지 학이 날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수천수만의 사포질을 하면서, 명인도 한 마리 학이 되어 갔다. 그러는 동안 자식을 위해 두 손을 모았고, 손주를 위해 기도하며 성자가 되어갔다. 새는 때로는 십자가가 되었다. 

 

마침내 옻칠이 더해지고 작품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며 다시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 하늘을 만나게 해 달라고. 눈을 뜬 순간 학은 날개를 펼치고 옥 빛 하늘 신의 품속에 안긴다.

 

전시된 작품을 보며 사람들은 감동한다. 생명체의 탄생에 대해. 숨결을 느끼고, 작품이 태어나기까지의 아픔을 가슴에 품는다. 작품에 새겨 넣은 혼에 대해 속삭인다. 그것은 ‘솟대’라기보다는 ‘기다림’ 의 승천이었다. 

 

명인은 자식에게 이름을 붙였다.

 

 ‘백인당(百忍堂)’으로 붙이기도 하고, ‘솟대의 향연’이라고도 했다. 어느 자식은 ‘꿈’이고, 어느 자식은 ‘믿음, 소망, 사랑’이라고 붙였다. 

 

애착을 갖는 작품은 ‘기다림’이었다.

 

이 작품은 ‘소나무’와 ‘쪽 동백’이 재료로 쓰였다. 대체로 솟대는 하단, 중단, 그리고 상단 으로 나뉜다. 

 

먼저 하단은 고주박이 다 된 죽은 나무이다. 그 나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다.이제는 썩어져 없어질 것만 같던 소나무의 깊은 상처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사포로 닦고 닦으며 그 시련의 상처를 달랬다. 깊게 패인 구멍의 아픔을 같이하며, 한 많은 세월을 참아온 자신도 그 깊디깊은 구멍 속에서 바라보았다. 소나무는 대나무처럼 속이 빈 상태로 제 길을 찾아 가고 있었다. 시련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몸을 비틀기도 하고 거친 숨을 몰아 쉬기도 했다.

 

중단은 방울토마토의 반의 반 크기로 돌아가며, 깊은 상처가 돌아갔다. 인생의 길이 아픔이 이어지듯 중단부 역시 고통스런 삶 그 자체였다. 상처는 깊었으나 양쪽 끝을 장식하며, 예술 작품으로 승화되었다. 

 

상단에서는 청렴, 정직, 강직을 배울 수 있는 곧은 나무를 주 재료로 썼다. 아픔으로 깊게 패인 구멍 위에 숨에 불어넣었다. 하단부에 이어, 중단부에서도 시련과 고통은 여전했다. 몸을 비틀려도 길은 여전했고 맨발로 걷는 길은 여전히 가시밭길이었다. 뾰족한 자갈밭이었다.

 

솟대에는 명인의 철학이 담겨있다. 30년 긴 세월을 외곬 인생길을 걸어온 삶이 녹아있다. 시련과 고통이 따르고 아픔의 연속이었지만, 하늘이 주신 옷을 입고 솟대는 승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로소 솟대는 하늘로 날기 위한 곧은 숨을 쉰다. 그곳에 명인은 마지막 자신의 삶과 혼을 불어넣었다.

 

마침내 십자가를 향해 명인은 눈을 감는다. 

 

감은 눈에는 푸른 창공을 높이 나는 학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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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니 2023/09/25 [09:44] 수정 | 삭제
  • 우리가 명인, 장인 이라고 불리워지는 이 분들을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을 것 같네요. 많이 힘들고 외로웠을 길을 꿋꿋이 해 오신 장인분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하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