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개미」(1991)가 처음 출간되었을 때만 해도 그는 전 세계는커녕 자신의 나라 프랑스에서조차 미미한 존재였다. 그런데 이 소설이 우리나라에서 번역본으로 출간되면서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출판사의 고급화 전략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판매 전략이 성공적으로 전개되면서, 100만 부 이상이 팔린 밀리언 셀러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런 결과는 한국은 물론 프랑스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켜 베르베르는 인기 작가로 불리게 된다. 외국에서 먼저 인기를 얻고, 그 인기가 역으로 본국에서 뒤늦게 높아지는 행운을 얻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독자들이 이 책에 대해 이렇게 열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작가의 다소 엉뚱한(?) 상상력과 독자들의 지적 허영심의 교차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누구나 개미와 대화를 나누는 상상을 할 수 있으며, 개미의 군집 생활과 인간의 사회생활의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소설 「개미」에서는 이 상황이 실제인 듯 전개되고 있으니, 독자들은 자신의 작품인 듯 흥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과학부 기자로 근무했던 작가의 디테일한 감각과 종교와 역사, 환경 등에 대한 독특한 상상력이 가미되어 독자들을 독서 삼매경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꿀벌의 예언」 또한 작가의 사회적 동물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인구는 증가하는데, 꿀벌의 멸종으로 식량 생산에 막대한 차질이 생긴다면 인간들은 식량 전쟁, 곧 3차 세계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매우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인데, 베르베르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생의 기억을 좇아 중세의 세계로 간다는 독특한 상상력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원인을 알 수 없는 꿀벌의 치명적 감소, 지구 온난화로 인한 환경 재앙 등을 겪으며, 이 황당해 보이는 소설적 허구가 오히려 더욱 진실에 육박하고 있다는 아이러니에 당황해하며, 더욱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베르베르의 이 독특한 SF계 소설들은 30여 년 동안 30여 권이 30개 언어로 발간되었으며, 약 3,500만 권 정도가 판매되었는데, 그 판매량 중 30%를 한국인이 차지하고 있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작가의 한국 사랑도 유별난 데가 있다. 그는 한국 독자가 지적이며 미래지향적이어 자신의 작품을 잘 이해하고 사랑해 주는 것이라 한다. 그 자신 또한 한국의 정서와 잘 어울리며, 이곳에 오면 고향에 온 듯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을 보면, 그는 전생에 한국인이었음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은 그는 우리의 역사를 영웅의 역사로 높이 평가한다. 주변에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의 강대국들이 도사리고 있는데도, 한국인 들은 영웅적 기상으로 어려운 상황들을 극복해 왔다는 점이다. 특히, 영웅 이순신의 업적을 접하고, 그 활약에 감동을 받았으며, 그 영감을 중심으로 「왕비의 대각선」이란 작품을 집필할 계획임을 밝혔다.
결국 베르베르를 낳은 나라는 프랑스지만 그를 이해하고 발전시켜 준 나라는 한국이다. 전생에 한국인이었다는 그가 영웅 이순신의 영감을 받아 집필하고 있다는 「왕비의 대각선」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많은 독자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주기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먼데이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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